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간방 박씨 Feb 08. 2020

전직 K경감님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이야기

2018년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정지선이나 횡단보도가 설치되지 않는 교차로에 진입하기 전에 황색 불이 들어오면 교차로 직전에 무조건 정지해야 하는 거야. 이후에 법이 바뀔 수 있겠지. 하지만 바뀌기 전까지는 우리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거야. 만약 시험 중에 이것을 위반하게 되면 실격은 물론 범칙금까지 물게 되는 피박을 당하게 되는 거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알겠죠?


길가다가 황색 불만 보면 운전면허 수업 전에 항상 이 말씀을 하셨던 전직 K경감님이 떠오른다. 나는 법을 배워본 적은 없다. 학교 다닐 때 교양수업으로 학점을 쉽게 따려고 한 학기 동안 행정법을 배우긴 했었다. 판례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판례를 매번 말씀해 주셨던 덕분인지 이 판례만큼은 평생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살면서 "피박"이라는 단어는 그때 처음 들어봤다...


처음 K경감님을 만난 것은 경기도의 어느 운전면허학원이었다. 수많은 강사들 사이에서 K경감님은 눈에 띄었다. 항상 머리는 단정했고 잘 다려진 검정 바지에 깔끔한 검정 구두를 신고 위에는 경찰 점퍼를 입고 계셨다. 다소 편안한 복장으로 쉬는 시간이면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다른 강사랑은 다르게 K경감님은 항상 카운터 옆 본인 책상 앞에 앉아서 조용히 본인 할 일만 하시는 듯 보였다. 점심시간에는 강사들하고 어울리려고 노력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강사들과 K경감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햇빛에 많이 그을린듯한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입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걸음걸이조차 다른 강사들과 달랐던 K 경감님은 내 예상대로 전직 경찰이었다. 원칙주의자에 학생들에게 직설적이다라는 평으로 학원의 이미지를 깎아먹는다는 소리까지 들었다지만 나는 K 경감님이 좋았다.


도로주행을 연습할 때 다른 강사들은 내 옆에서 하품을 쩍쩍하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딴청을 피웠다. 그러다가 내가 실수를 할 것 같으면 그제야 브레이크를 잡아주거나 핸들 조작에 대해 설명을 한다. 물론 운전면허학원에서 정규 교육을 기대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K경감님은 달랐다.


조심해. 정신 차리고 잘 봐야 해요. 이 양반은 왜 여기다가 불법주차를 해 놨어!

여기가 유턴 자리가 아닌데 불법유턴 차량을 따라가면 어떻게 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 앞으로는 더 믿을 놈 없어질 거야!

고만가. 고만 가고 이제 좌회전해서 나가야지. 불법주차 차량하고 부딪히게 생겼잖아!

뒤에서 빵 한다고 녹색불도 아닌데 나가려 하면 어떻게 해? 그러다가 당신만 죽는 거야...


원래 말수가 없으신 분인지 모르겠지만 운전하면서 잡담 한번 나눠본 적이 없었다. 조금만 흥분하시면 경상도 억양이 강하게 풍기니 웬만한 사람들 앞에서도 기가 안 죽는 나도 쫄보가 될 때가 많았다. 습관적으로 하시는 헛기침 소리에도 나는 그분 앞에서는 영락없는 쫄보였다.


나는 운전면허를 꽤나 늦게 땄다.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운전에 대해 딱히 필요성을 못 느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운전은 하지 않아도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면허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답게 3일 뒤에 바로 필기시험을 보도록 인터넷 접수를 해버렸다. 출퇴근 시간 동안 앱으로 모의고사를 3일 동안 푸니까 필기는 100점으로 무난히 통과했다. 

기능시험은 직각주차가 어렵다고 했는데 K경감님 하고 친하다는 K강사님의 굉장한 호통과 스파르타 교육으로 기능 시험 역시 기대하지도 않게 100점으로 합격했다. 그래서 나는 도로주행도 당연히 100점을 맞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도로 위는 내 인생의 수많은 변수들과 비슷했다. 불법주차, 불법유턴이 온 거리에 난무했고, 정지선 위반해서 세우는 차들로 인해 보행자 신호가 안 보여서 나 같은 초보가 우회전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고 무단횡단, 빨간불인데 횡단보도 건너는 사람들, 좌측 깜빡이 안 켜는 버스들 등 혼을 쏙 빼놓는 변수가 참 많았다. 게다가 그 지역 사람이 아니다 4가지 코스의 도로도 외워야 했다.


시행착오 많았던 도로주행은 93점으로 합격을 했다. 그리고 나는 K경감님께 합격도장이 찍혀 있는 응시표를 가지고 가서 보여줬다. 핸들 조작 미숙으로 7점 깎인 나에게 평소 하던  대로 "연습 좀 더 하세요!"라고 얘기하고 갈 길 가실 줄 알았는데 "합격했으면 됐어요. 수고했어요"라는 말과 함께 처음으로 나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K경감님도 웃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분으로부터 처음으로 듣는 따뜻한 말과 눈빛에 나도 그제야 그분 앞에서 환하게 웃었던 것 같다. 요즘 날씨에 K경감님이 항상 입고 다니시던 그 점퍼를 길거리 곳곳에서 보면서 그분 생각이 난다. 61세의 나이에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사시는 모습이 나에게 큰 울림을 가져다준다.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주말을 반납하고 반차를 내면서 면허 따러 다니느라 마음고생과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었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그쪽 방향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만약 언제 어디서 다시 K경감님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따뜻한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운전 이외의 얘기도 나눠보고 싶다.


당시 운전면허학원에 있던 1천 원짜리 자판기 커피도 한사코 사양하시던 K경감님의 뒷모습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원칙주의자로 봐주는 것 없고, 몸에서 풍기는 센 기운이 대다수의 사람들을 주눅 들게 했다지만 나는 그분이 고수하시던 원칙과 철학이 계속적으로 지켜지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전에는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