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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n 13. 2020

화원 사장님 이야기

사장님과 아이들 모두 잘 되길 바라

회사에 다니면서 나는 의외의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생각해보니 20대의 나는 삼촌들하고 잘 지냈다


퀵 기사분, 택배 아저씨, UPS 아저씨 그리고 사무실 근처 화원 사장님은 전부 사무실 근처 내 친구 같은 삼촌들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은 내가 퀵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사무실 근처 지나가다가 과자를 가져다주셨던 퀵 아저씨다. 그때 당시 받았던 과자는 정말 어렸을 때 먹었던 샤브레, 맛동산 그리고 초코칩 쿠키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말 감동이었다. 그러나 사무실 안까지 들어와서 자꾸 검은 봉지를 내미시니 어렸던 나는 그 관심이 다소 부담이었었다.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사무실 벨을 누르시던 그 퀵 아저씨를 보면 어느 순간 같은 사무실을 쓰던 마케팅 부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먼저 부를 정도였다. 그래서 가끔은 그 아저씨가 온다고 하면 나는 책상 밑에 숨기도 했다. 


내 표정을 기가 막히게 읽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고 힘내라고 얘기하고 돌아가시던 택배 아저씨도 있었다. 한 번은 퇴근도 못하고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아저씨께서 밖에 있던 택배 물건을 집어 가시면서 나에게 '어딜 가나 똑같다. 힘내라'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 순간 나는


아니에요... 여기 진짜 이상해요... 뭘 해도 *랄하잖아요


라며 눈물을 살짝 보였다. (이런... 회사에서 딱 한번 울었네)


다소 장난기가 많으신 택배 아저씨여서 그 후로 내가 운 걸 놀리면 어쩌나 혼자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내가 소사원에서 소과장 1년 차까지 내가 울었던 얘기를 하지 않으셨고 작년의 어느 날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셨다.


해외 발송 서류를 제 때 준비 못해도 여유 있게 기다려주시던 UPS 아저씨 그리고 오늘 만나 뵙고 온 화원 사장님까지 다들 내가 사회에서 버티는 데 재미를 주셨던 분들이다.


화원 사장님은 내가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러 성내천을 걷다가 우연히 알게 된 분이다. 처음 그곳에서 선인장을 샀고 며칠 뒤 M 하고 화원에 다시 갔다. M은 음식이든 물건이든 한번 꽂히면 주구장창 그것만 파고든다. M은 그 화원에서 한 달 동안 화분을 5개를 사서 책상을 꾸몄다. 사무실 안에 큰 나무를 놓고 싶다는 상무님의 말에 나는 그 화원에 가서 나무 2개를 샀다. 화분을 사지 않아도 점심시간에 산책하면서 화원에 들어가서 새로 들어온 식물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


사장님은 화원을 하시면서 소년원에 갔다 온 아이들을 위해서 작은 단체를 만들어서 후원 같은 걸 하시는 분이셨다. 소년원에서 나온 아이들을 위해 집을 마련해 주시고 일을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다고 한다. 작년에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유럽을 거쳐서 인도까지 갔다 오는 코스를 잡으셨다. 내가 있는 부서가 해외사업부 인걸 아시고는 이런저런 코스와 계획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다. 하지만 그 계획은 나한테도 너무 무리하고 힘든 코스였다. 기억에 남는 건 아이들이 인도에 가서 노숙자들을 돕고 병든 사람을 씻기는 일정도 있었다.


사장님, 인도 일정은 애들한테 너무 힘든 거 아닌가요?

아니야... 걔들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 경험해 봐야 하고 이런저런 거 다 겪어봐야 해!

인도 음식도 웬만한 어른 입에도 안 맞을 텐데요... 게다가 예산도 너무 빠듯하잖아요. 완전 극기체험이네요. 전 다른 국가는 다 가보고 싶어도 인도는 절대 가고 싶지 않던데요... 하하  


그 후로 나는 아이들 몇 명은 중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머지 아이들은 인도까지 가서 일정을 전부 마쳤다고 들었다. 내 예상대로 아이들은 인도에서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고, 공항에 있던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엄청나게 먹어치웠다고 한다.


점심시간 1시간의 빠듯한 일정 때문에 화원에 자주 가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요즘 날이 더워지니 화원 문 여는 시간도 오후 3시로 변경이 되면서 올해는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늘 회사 근처에 일이 있어서 내친김에 화원에 가서 마음에 드는 화분이나 하나 사려고 갔다.


사장님은 나만 보면 아이들 얘기를 하신다. 최근에는 악기도 다룰 줄 아는 아이들이 외국 아이들하고 함께 콘서트까지 했다고 한다. 이쯤 되니 나는 사장님이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들을 돕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혹시나 실례가 될까 봐 질문은 아직까지 못했다. 사장님은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며 근처 역까지 차로 데려다주셨다. 코로나 때문에 화훼농가가 어렵다고 해서 나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이 집에 화분을 많이 주문을 해서 엄청 바쁘셨다고 한다. 게다가 재난지원금으로 사람들의 소비가 늘면서 작년보다 매출이 30%나 늘었다고 하셨다.


나는 지겹도록 한 회사의 한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 같다. 나는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를 사람 덕분에 치유받고 힘을 내면서 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끝나지 않는 경쟁 속에서 너무 앞만 보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한 때는 나는 내가 제일 잘나고 나머지 사람들은 나보다 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나의 성장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잘됐을 때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들을 그 주위 사람들로부터 배우면서 더 다양한 성장을 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화원에 가서 코로나 없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뵙고 싶었던 사장님과 많은 얘기를 나눠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왔다.


집에 사 가지고 온 만세 선인장은 볼 때마다 화원 사장님의 넉넉한 미소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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