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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n 11. 2020

요가복 입고 돌아다니지 않기

사장님이 지켜보고 있다

지하철로 2 정거장, 버스로는 9 정거장 떨어져 있는 필라테스 학원을 나는 걸어 다닌다.


몸에 짝 달라붙은 요가복 차림으로...


요즘 햇살도 짱짱하니 선글라스도 쓰고 마스크는 당연히 착용한다. 이런 차림으로 운동할 때만 하는 똥머리로 다니면 길에서 아무도 몰라볼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 사장님하고 마주친다.

서울 시내의 어느 도로 차 안에서 나를 보시고, 그다음 날 사무실로 굳이 내려오셔서는 운동하러 가는 거 다 봤다고 말씀하신다.


얼마 전에는 운동을 마치고 마트에 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내려오던 중간에 4층에서 잠깐 문이 열리더니 사장님이 그 엘리베이터로 들어오셨다. 우리는 서로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나는 운동을 마치고 나서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 차림으로 마트에서 우유만 하나 사서 집까지 다시 걸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회사도 아닌 상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한 사장님은 내 차림을 보고 복장 불량이라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내리기 직전까지 혀를 차셨다.


사장님은 사무실 안에서 직원들 복장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

눈에 띄는 염색이나 짧은 치마 그리고 목이 훤히 보이는 상의를 불편해하신다. 문신을 한 직원이 있는데 샌들을 신고 왔다가 발등에 있던 문신을 사장님이 보시고 또 한차례 매우 불편해하셨다.


이제는 나도 요가복을 입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사실 가장 큰 계기가 됐던 거는 요가복 차림으로 버스를 타던 여자 엉덩이를 누군가 사진 찍어서 한차례 논란이 됐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도 관련 기사 댓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어봤었던 거 같다. 사실 생각해보면 운동복이니까 운동할 때만 입고 밖에는 다니지 말아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렇다면 등산복을 입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거는 어떤가?라는 의문이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요가복은 운동할 때만 입고 길거리에 돌아다니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계획했던 요가나 필라테스 수업을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만난 강사님들은 전부 이 운동이 좋으면 나보고 강사를 해 보라고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게 일이 되어버리면 즐겁게 할 자신이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은 뭣도 모르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파악 못하던 어린 나이에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오랜 시간 해외사업부에 눌러앉게 되면서 앞으로도 해외사업 쪽에서만 일을 하게 될 거 같다. 아마도?


나는 커피를 매우 좋아하고 카페 분위기도 좋아해서 이왕이면 한번 간 카페는 다시 안 가고 다른 카페를 이곳저곳 다니는 편이다. 일을 그만두고 지금 모아둔 돈으로 카페를 해 볼까?라는 생각도 수십 번 해 봤지만 카페를 하면서 지금보다 돈을 못 번다면 나는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커피의 향과 맛을 좋아하는 건데, 카페 사장이 돼서 하루에 커피를 몇 잔 팔아야겠다 라는 목표가 생겨버리면 그 후로는 커피를 지금처럼 절대 즐기지 못할 거다.


그래서 지금은 좋아하는 취미는 그냥 퇴근 후나 휴일에 즐기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문득 생각을 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더 가까워지면, 나는 그 사람과 이전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전에는 그들이 나와 가치관이나 취미가 비슷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친구가 된다. 하지만 친구가 돼서 그들의 속사정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가끔씩 고민에 빠진다. 역병 때문에 친구가 실직을 당했을 때, Y가 갑작스럽게 눈물을 보였을 때 그리고 M의 부모님이 별거 중인 걸 알았을 때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겁부터 덜컥 났다. 


좋아하는 취미를 취미로만 남겨둘 때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더 값어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노숙묘지만 내 눈에는 정말 예쁜 사랑하는 Copito. 내가 너를 소유하게 돼도 널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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