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간방 박씨 Sep 08. 2020

회사가 나에게 해주는 것들

작년과 너무도 다른 올해의 회사 생활

회사에서 문자가 왔다.

오늘부터 독감 예방주사 맞는 기간이니 알아서 맞고 회사에 비용을 청구하라는 거였다.


밥 따로 먹으면 안 되고 독감 주사 맞으러 갈 때도 우리는 함께 움직여야 올바른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작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독감도 집 근처든 아니면 회사 근처든 알아서 맞고 오라고 한다. 이제는 여럿이 모이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신입 땐 이런 삶을 정말 간절히 바랐다.

우리가 가족도 아닌데 왜 함께여야 하는 건지. 뒤돌아서면 험담을 하고, 인사팀도 아닌데 서로 출퇴근 시간을 감시했다. 심지어 승진 때문에 남의 책상 사진까지 찍어서 상사에게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 보기 싫은 직원과 점심시간까지 얼굴 마주 보며 밥 먹기 싫다고 퇴사한 어린 직원들도 이미 여럿이다. 왜 우리가 이래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10년을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점심도 알아서 해결을 하고 맡은 일만 제시간에 차질 없이 하면 된다.

어차피 퇴사를 원했던 사람들은 이미 다 나가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짬밥이 많다. 그래서 우리끼리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입사한 지 6개월 된 우리 막내 S일 뿐이다. 옆에서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보고 배울 일이 앞으로 더 드물게 된 와중에 알아서 잘 버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꼭 필요한 대화만 하고 다소 거리를 두다 보니 우리는 관계가 더욱 나아진 듯하다.

코로나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내가 신입 때 겪었던 술잔을 돌리면서 간접키스를 한 에피소드를 훗날 방송으로나 보겠지 싶다. 그때도 유일한 여직원에 나이도 가장 어려서 나는 특히나 더 억울했었던 것 같다. 정말 좋아하지 않는 이상 내어주지 않는 나의 민감한 부분을 나이 지긋하신 그분들은 월급을 무기로 반강요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윗세대 분들은 코로나 시대의 변화되는 분위기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순환근무나 재택근무에 대해서 나를 보기만 하면 이런 근무 행태에 대한 불합리함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을 하신다. 그렇게 업무 시간을 강조하시는 그분은 출근 시간이 오후 3시에서 밤 10시이다. 가끔은 내가 업무를 끝내고 퇴근할 때 인사를 하면 대답을 하지 않는다. 본인이 남아 있는데 칼퇴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겠지.


오늘은 오후 근무였다.

빠른 독감접종을 하라는 권고에 나는 출근하면서 동네 내과에 들러서 주사를 맞았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감기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아서 내과나 이비인후과에 간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사를 온 이후 이 동네에서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평일 낮 시간에 병원에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병원에 오셨다. 그중에 의외로 건강보험료를 체납해서 진료가 어렵다는 간호사 언니의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건강보험료를 신경 쓰며 살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는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놀라웠다. 이제까지 회사에서 월급을 줄 때 알아서 떼어갔기 때문에 나는 원래 신경을 안 써도 되는 부분인 줄 알았던 것이다. 퇴근하면서 생각해보니 엄마는 내 피부양자로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으셔도 됐다. 존경하는 아버지만 알아서 다달이 건강보험료를 내고 계셨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도 이제 근무하면서 장점이 많이 사라진 직원들이 있다. 그 직원은 이미 올해 초부터 힘듦을 느꼈을 거다. 아마도 우리 부서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도 변화에 따른 구조조정이나 직무전환이 생기지 않을까?


얼마 전부터 회사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며 다니고 있다.

기한을 보장할 순 없지만 어찌 되었거나 매달 지급되는 월급과 복리후생 그리고 소속된 곳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회사는 이미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요즘 들어 브런치에 퇴사 관련하여 글이 잘 보이지 않는 게 단순한 내 기분 탓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상대적인 돈의 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