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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Sep 06. 2020

상대적인 돈의 가치

경기가 빨리 회복되기를

나만 이런 상황이었으면 정말 한강 다리 갔을 거예요


몇 달 전 3년 넘게 수강했던 필라테스를 그만두고 나는 회사 근처 필라테스 학원으로 옮겼다.


한숨을 쉬며 위와 같은 말을 내뱉은 나를 가르치던 원장 선생님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힘들 때마다 "죽어 버릴까?, 아, 자살하고 싶다"라는 얘기를 곧잘 한다. 특히 어린 친구들일수록 습관적으로 이러한 얘기를 내뱉는다. 주위에서 쉽게 듣는 이런 말에 나는 아직도 예민하다. 27살에 친했던 회사 동료의 투신자살 사건은 아직도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어쩌면 평생 동안 잊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의 첫 번째 위기가 닥치던 지난 상반기에 원장님은 수업하는 도중에 본인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나에게 얘기를 했다. 내년 3월이면 갚아야 할 돈이 얼마인데 막막하다는 거였다. 그 돈은 목숨을 바꿀 정도로 큰 액수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시불로 갚을 수도 있는 돈이었다. 사람마다 돈의 무게는 달랐고, 액수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돈이 사람의 목숨을 뒤흔든다는 게 무서웠다.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의 금액이고, 누군가에게는 1년만 빠듯하게 모으면 충분히 갚고도 남을 정도의 액수였다.


사람은 제각각의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려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가장 많이 배웠던 "if"절을 대입해서 나는 마음속으로만 생각을 한다.


만약 나라면, 빚을 갚기 전까지만이라도 지출을 줄일 텐데


아빠의 월급이 빠듯하던 시절 엄마는 허리띠를 항상 졸라맸다. 매달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아빠였지만 액수는 네 사람이 먹고살기에 빠듯했다. 남들이 자동차 하나씩 가지고 있을 때 우리 집만 없었다. 오빠도 그때 가장 힘들었다고 말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추억이 가장 많다고 얘기를 한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빚 하나 없이 각자의 보금자리를 장만했다. 누구 하나의 불평불만이 있거나 가치가 달랐다면 절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빚이 있거나 생활이 어렵다면 다들 우리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기준으로 몇몇 사람들을 봤을 때 매일매일 새는 돈이 너무도 많았다. '적게는 몇 백 원에서 많게는 몇만 원까지, 그 돈에서 30일만 곱해도 큰돈인데 어쩌려고 저러지?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을 속으로 참 많이 하게 된다.


이렇게라도 숨통을 트이거나 즐겁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아서요


라고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나라면, 즐거운 것은 마음이 홀가분한 이후에 느끼는 게 차라리 낫다.


올해 3월에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까지 얼마를 모았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내 눈동자는 오른쪽 위로 향했다.


대략 얼마 모았을 텐데 정확히 얼마지?


순간 나는 너무 창피했다. 10년 넘게 회사의 노예로 지내면서 꾸준히 저금을 하긴 했는데, 왜 부서 매출액은 정확히 아는데 내가 얼마 모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걸까? 그 날 집에 돌아가자마자 아빠가 돈 관리하는 액셀 시트를 카톡으로 받았다. 그리고 나도 아빠와 똑같이 정리를 했다. 정리를 하고 보니 내 손안에 있던 모든 통장과 돈의 내역 그리고 앞으로 받을 이자 금액까지 정확히 알게 됐다.


이렇게 액셀로 돈을 정리하고 나서 보니 돈을 허투루 쓰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리고 머릿속에 더 명확하게 숫자가 정리가 됐다. 나는 지난달에 은행에서 처리 못했던 금액까지 휴가를 내서 전부 완납을 하고 왔다. 그리고 궁금했던 것들은 메모를 해서 전부 직원에게 물어봤다. 은행 직원한테도 다소 어려운 내용인지 내가 하는 모든 질문에 대답을 바로바로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직원은 다른 곳으로 전화를 돌려서 설명을 듣고 난 후에 다시 나에게 설명을 해 줬다. 결국 예상보다 은행에서 머무는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앞으로의 자산에 대해 집에 돌아와서 아빠께 설명을 해 드릴 정도로 명확해졌다.


자잘한 돈을 쓰기는 쉽다. 그리고 그 돈의 가치는 굉장히 작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돈의 개념과 가치는 정말 큰돈을 쓸 때에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아직은 짬밥(?)이 안돼서 1.8%의 낮은 이자율로 묵혀 두고 있지만 내년 이후에는 거래를 해서 좀 더 많은 것을 현실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엊그제 마트에 갔다가 몇 달만에 필라테스 원장님을 봤다.

수북이 걸려 있는 옷 사이로 마스크를 한 채 서 있는 사람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원장님이었다. 기존의 학원은 문을 닫고 관리비가 싼 경기도로 옮겼다고 들었는데 무슨 사연으로 우리 집 근처 마트에서 옷장사를 하고 있는 걸까?


3년 넘게 원장님께 운동을 배우면서 나는 그분께 몇 번의 신호가 온 걸 느꼈다. 그것은 부정적인 신호이기도 했고, 긍정적인 신호이기도 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이니 그분도 그 신호를 느끼고 나에게 사적인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런 신호를 무시한다. 알면서도 귀를 닫으려고 할 때가 있고, 우리가 편할 대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넓고 쾌적한 강의실에서 만나던 원장님을 화장실 옆 한 매대에서 마주치니 나는 또 불안해졌다. '내년 3월까지 빚을 못 갚아서 정말 무심코 내뱉었던 그 일을 실천해버리면 어쩌지?' 얼른 경기가 회복되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원장님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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