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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Sep 05. 2020

깨끗한 음식을 먹을 권리_2

세상에 이런 글을 또 쓰게 될 줄이야

무엇을 먹느냐는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약을 먹고 운동을 한다고 해도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는다면 내 몸에 이로울 리가 전혀 없다. 게다가 요즘 시국에는 식당에서도 줄줄이 감염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들 배달음식에 눈을 돌리고 있다. 과연 배달 음식은 안전할까?


나와 가장 가까운 지인 중 한 명은 영양사이고 또 한 명은 큰 식품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들과 지내다 보니 나도 주워들은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몇 달 전 유명한 칼국수집에서 노루 궁둥이 버섯 모양을 한 휴지가 칼국수 밑바닥에서 발견된 이후로 나는 깨끗하고 믿을 만한 식당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회사에서 점심은 정말 중요하다.

5시 30분에 일어나서 고구마랑 커피를 마시고 출근을 하면 10시 무렵에는 배가 정말 많이 고프다. 그렇다고 막내 S처럼 탕비실에 있는 과자로 식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점심 식사는 정말 든든하게 먹는 편이다. 고기반찬은 필수이고 식후 아이스라테나 아이스 카푸치노는 덤이다. 월급이 많지는 않아도 점심 식사로 외근 나가서든 사무실에서 뭘 먹든 회사에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시켜먹는 것에도 굉장히 예민해졌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조리하는지, 조리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근래에는 대안으로 막내 S가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만 밥을 주문했다. 그러다가 재택근무와 순환근무로 전환이 되면서 지난주에는 점심을 회사에서 먹지 못했다.


지난주 순환근무가 내 차례였던 날, 퇴근길에 나는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를 사기 위해 사무실 근처 한 카페에 들렀다. 그런데 평소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테이블은 전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폴리스라인 같은 줄이 쫙쫙 쳐 있어서 매장 안쪽으로 못 들어가게 돼 있었다. 카페 입장 전에는 QR code를 찍고 체온을 쟀다. 직원은 니트릴 장갑을 낀 채로 온도계를 만지고 의자를 끌어서 다시 앉았다.


그 넓은 카페에는 직원 두 사람에 손님은 나 혼자였다. 평소 먹고 싶었던 샌드위치를 샀고 그 직원은 '샌드위치를 데워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무심코 그러라고 했다. 그러다가 몇 분 뒤 바로 후회를 했다. 체온계를 가지고 있던 그 직원이 벌떡 일어나서 니트릴 장갑 교환도 없이 샌드위치 비닐을 떼고 집개도 없이 그 장갑을 낀 채로 샌드위치를 덥석 잡아서 오븐에 넣고 몇 분 뒤 오븐에서 뜨거운 샌드위치를 그 손으로 꺼내서 포장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카운터 너머로 물끄러미 그 광경을 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계산 담당을 하던 직원은 나에게 큰 소리로 "카운터에서 멀리 떨어져 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 말고 나한테 이런 큰 소리를 낸 사람이 있던가?


순간 그 직원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 날은 8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날이었다. 순환근무로 밀린 일 처리하느라고 물 500ml만 마시고 체력이 방전된 상태였다. 그 예민한 와중에 샌드위치 하나 먹겠다고 카페까지 걸어왔는데 이 정신없는 직원을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니트릴 장갑 교체 안 하고 음식을 만지고 포장한 건을 직원들에게 얘기를 해서 해결하려고 했던 내 결심은 무너졌다. 조용히 카페를 나와서 나는 지하철 안에서 본사에다가 정식 컴플레인을 올렸다. 첨부서류는 시간과 날짜가 분명히 찍힌 영수증이었다.


손에 들려 있는 따끈따끈한 샌드위치는 버릴까 말까 집에 오는 내내 고민했다. 사실 버리기에는 너무 배가 고팠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 앨리스 재방송을 보며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그리고 오늘 본사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해당 매장 확인 시, 직원이 니트릴 장갑을 끼고 출입문에서 업무 후 교체 작업이나 손 세척 과정 없이 바로 샌드위치를 데운 점 전달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고객님께 불편한 경험을 드린 점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한 마음에 고객님께서 해당 매장으로 재방문이 가능하시다면 사과의 말씀과 함께 해당 결제건에 대해 취소 처리와 함께 서비스 쿠폰 1매를 발행해 드리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받아 안내드립니다. 결제일로부터 14일 이내 해당 매장으로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남겨주신 말씀은 해당 매장의 책임자에게 공유하였으며, 추후 동일한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 파트너 대상 위생 교육을 진행하여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이 메일을 보고 나는 식품회사 다니는 친구에게 내용을 캡처해서 보냈다.

꼴도 보기 싫고 히스테리를 부린 그 직원 얼굴을 다시 보기 싫다는 나에게 그 친구는 짧은 조언을 나에게 남겼다. 그리고, 나는 그 내용을 참고하여 다시 메일을 보냈다.


카드는 수기로 취소해주시고 쿠폰은 핸드폰으로 넣어주시길 바랍니다. 사과받자고 코로나 시국에 다시 내방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10여분 뒤, 결제된 돈은 취소됐고 쿠폰도 핸드폰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쉽고 간편하게 될 걸 굳이 왜 재방문하라고 한 건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빠른 회신과 서비스는 이 카페가 최고인 것 같다.


그 친구 덕분에 후련해진 내 마음을 담아 쿠폰은 '넌 천재야'라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친구에게 보냈다.


누가 보면 갑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돈 주고 내가 음식을 사 먹으며 받는 서비스를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나 요즘 마트에서 니트릴 장갑 1+1 하던데 굳이 아낄 필요가 있나? 몸에 밴 위생적인 습관으로 깨끗한 먹거리 실천에 다 같이 동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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