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습할 땐 박물관에서 쉬는 게 최고
프라하 출국장에서 핸드캐리로 통과되던 짐가방은 X-ray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X-ray에 뭐가 얼마만큼 찍히는지 궁금해서 살짝 들여다보니 가방 안이 적나라하게 전부 찍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중에 내 손가방 안에 뭔가가 그들의 감시망에 걸렸다.
캐리어 안에는 그나마 깨져도 가슴이 덜 아픈 것만 넣었고, 핸드캐리안에는 파손되면 그야말로 자다가 이불킥 감인 소중한 기념품들만 담아뒀다.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던 연세가 지긋한 직원은 내 손가방을 열고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똘똘 포장된 어느 하나의 물건을 마구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다 가져가도 좋으니 절대 뺏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물건 몇 개가 그 가방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X-ray에 걸린 물건은 30cm 정도의 트로피 모양의 유리공예 작품이었다.
왜? 유리공예가 반출 불가니?
흠...... (단 몇 초의 시간이었지만 상당히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만약 안된다면 그냥 두고 갈게
아냐, 그냥 가지고 가
그 직원은 내 손가방을 더 뒤져보려다가 귀찮은지 인상을 더 찌푸리고는 손짓으로 이제 그만 가라고 했다.
신용카드가 없는 나는 해외여행을 갈 때면 엄마의 신용카드를 비상용으로 가지고 간다. (과거 로마 여행할 때 로마 시내로 들어가는 열차 티켓 파는 창구가 밤 11시를 훌쩍 넘은 늦은 시간이라 문을 닫았다. 그래서 나는 기계로 티켓을 구입했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 기계는 현금은 안되고 오로지 신용카드만 되던 기계였다. 당시 현금만 있었던 나는 길바닥에서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붙잡고 '제발 내 표 한 장만 같이 사줘라. 내가 현금으로 주겠다!' 고 구걸 아닌 구걸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지만 배낭여행을 온 이스라엘 아저씨의 도움으로 같이 표를 사서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여행 시 쓰는 돈은 전부 현금으로 환전해 간다. 하루의 예산만큼 현금을 지갑에 넣고 엄마의 신용카드는 비상용으로 항상 가지고 다닌다. 엄마의 신용카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외에서 쓴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만의 철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긴급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신용카드는 손대지 않기
나만의 굳센 철칙으로 점심과 저녁을 굶을지언정 엄마 신용카드는 손댄 적이 없다. 그랬던 내가 프라하에서 엄마의 카드를 긁을까 말까 엄청나게 망설였던 경험이 있었다. 그건 바로 프라하의 한 외곽에 있던 빈티지 가게에서 깨진 곳 하나 없는 일본 식기 세트가 헐값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말을 듣자마자 신용카드로 사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냥 나만의 원칙을 무너뜨리기 싫었다.
한번 저지르는 게 어렵지 두 번 일 내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라하에서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박물관에 가서 비슷한 일본 그릇이 보이면 아쉬움이 한가득 밀려온다. 그리고 사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러시아를 경유해야 했기 때문에 온전히 들고 올 자신도 없었다.
도자기에 관심이 많은 나는 오늘 드디어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을 보러 갔다. 과연 과거 왕실이 얼마나 좋은 도자기를 사용했고, 해외에서 어떤 도자기들을 수입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나이가 들었는지 개인적으로 화려한 도자기보다는 은은한 한국 도자기가 더 눈길을 끈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에 에어컨 빵빵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낸 시간이 무척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 입장객 수를 제한하니 주말인데도 정말 여유롭고 조용히 관람할 수 있었다.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게 번거롭기는 하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성숙한 관람 문화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