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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ug 15. 2020

커피를 맛있게 타는 소과장

우리 집 커피나무에 커피체리가 열렸다!

나는 사장님 커피를 타는 소과장이다.

소사원일때부터 지금까지 사장님이 우리 부서에 오시면 내가 커피를 타 드렸다.

사장님께 커피를 가져다 드릴 때는 반드시


따뜻한 믹스 커피 + 설탕 + 스푼


으로 준비해 드려야 한다.

커피를 가져다 드릴 때 나는 탕비실에 있는 사탕이나 과자를 예쁘게 세팅해서 같이 갖다 드린다. 사장님은 항상 당이 많이 땡기시기 때문이다.


소사원이었을 땐 비서 언니가 부재중일 때마다 나는 비서실을 지키곤 했다.

임원층에 올라가 보면 내가 근무하는 곳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고 약품 냄새도 나지 않았다. 좋은 공간에서 넓은 책상에 앉아 있으니 나도 임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일본 순사 앞잡이처럼 생긴 팀장도 없었다.


각 임원들의 차 세팅은 전부 달랐다. S임원은 오로지 믹스커피 1잔, K 임원은 블랙커피 + 물 한잔, P 임원은 블랙커피 + 물 한잔+ 홍삼액기스, D 임원은 녹차였다. 그들은 우리 부서 탕비실에 있는 티백이나 커피머신으로 차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한자로 가득 쓰여 있는 차를 우리며 남는 건 나도 같이 마셨다. 가루가 아닌 손으로 잡힐 정도의 큰 찻잎을 티팟에 우려서 좋은 잔에 마시니 그 맛과 향이 참 좋았다. 그곳에서 나는 어른들께 차를 드리는 요령도 익혔다.


나는 커피에 누구보다도 까다로워서 원두도 직접 로스팅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구입을 한다. 사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소사원 1년 차까지 인스턴트커피 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비서실에서 임원들 커피를 내리면서 아메리카노의 세계로 들어오게 됐다. 회사 근처에 로스팅하는 카페가 많고, 사대문 안의 유명 카페에서 원두를 받아서 사용하는 카페도 있었다. 나는 법인카드로 원두를 사서 비서실에 있던 이름 모를 원두를 바꿨다. 원두를 바꾸니 커피를 한잔만 내려도 임원실 전체가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커피를 전혀 좋아하지 않던 비서 언니도 그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커피와 차를 드렸던 기억이 임원들 머릿속에는 아직도 있나 보다.

지금도 사무실에 가끔 내려오시면 내가 커피나 차를 내어드린다. 지금은 커피 심부름도 함부로 시키면 안 된다는 사회 분위기이기는 하다. 얼마 전에는 커피 한잔 타오라고 부탁했더니 커피를 밖에서 사 와서 전 사무실에 보란 듯이 돌렸다는 글도 읽었다. 그 글에 썩 공감을 하지 못하는 걸 보니 나도 이제 옛날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 글만으로는 그 회사의 분위기나 글쓴이가 그동안 겪었던 고충을 모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한다.


가끔은 아빠가 나이가 많아서 일찍 정년을 맞이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빠는 회사에서 매일 여직원이 커피를 타서 드렸을 거다. 왜냐하면 아빠는 커피를 직접 타서 드시지 않기 때문이다. 평일 오전 10시에는 엄마가 커피를 타서 드리고,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내가 아빠 커피를 타서 드린다. 커피도 베트남 G7만 드신다. 


아빠가 G7을 알게 된 계기는 엄마의 귀여운 하소연 덕분이었다.

부모님이 I에 거주하실 때 두 분은 YMCA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운동을 하셨다. 그곳 안에서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남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엄마는 항상 YMCA에서 혼자 운동하고 묵묵히 씻고 집으로 오셨다. 그러던 어느 날, 샤워를 하고 탈의실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한 구수한 커피 향이 코를 찔렀다고 한다.


교회 사람 중에 한 분이 베트남에 놀러 갔다가 커피를 사 왔다고 탈의실에서 한잔씩 타서 싹 다 돌렸다. 그런데 교인이 아니었던 엄마만 G7을 마시지 못했다. 엄마는 설마 본인만 빼고 커피를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셨던 것 같다. 다소 서러우셨던지 퇴근하는 나에게 전화로 이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그 당시 서울에서는 G7을 백화점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베트남 지사로 출장이 잡혔다. 엄마는 내가 베트남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나에게 시간 되면 베트남 커피를 사 오라고 했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아침을 먹고 현지 직원과 롯데마트에 갔다. (베트남에는 롯데마트가 있다) 롯데마트에는 G7이 한국의 백화점 가격의 1/3 수준이었다. 나는 한국돈으로 8만 원어치 G7만 샀다. 8만 원어치 커피를 사니 라면상자 크기 2개가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나는 현지 직원이 선물해 준 베트남 모자 논을 뒤집어쓰고 엄마가 그토록 드시고 싶었던 커피 2 상자를 두 손 가득 든 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서울 집에 도착해보니 엄마가 집에 와 계셨다. 집밥을 해주고 싶어서 오셨다고는 했지만 내 손에 들려있던 커피를 받으러 오신 것 같았다. 엄마는 G7을 전부 들고 가서 같이 관사에 살던 친했던 몇몇 분들께 G7을 선물로 드리고도 1년 넘게 베트남 커피를 드실 수 있었다. 


아빠 입맛에도 G7이 최고인 듯하다.

말레이시아 믹스 커피도 드렸지만 G7만 못하다는 평을 하셨다. 다행히 지금은 베트남에 가지 않아도 한국의 어느 마트에서도 G7을 거의 현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카페 알바를 못해본 아쉬움인지 회사나 집에서 내가 커피 담당을 한다. 집에 있는 전자동 커피머신으로는 엄마와 내 커피를 내린다. 우리는 라테만 마시기 때문에 우유 거품을 내서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 이번 주는 케냐 AA를 마셨고, 내일부터는 엊그제 광화문의 한 지하 카페에서 산 인도네시아 만델링 원두로 커피를 내려마실 계획이다.  


회사 근처 카페들을 제외하고는 한번 간 카페는 재방문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카페를 탐험한다. 나 혼자 카페에 간 적은 없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카페를 지나칠 때면 단 한 사람도 겹치는 사람이 생각난 적이 없다. 그 카페만의 향과 맛이 그 사람과 어우러지니 내 기억 속의 커피는 때로는 달고, 때로는 쓰고, 때로는 탄맛이고 그리고 때로는 매우 달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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