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간방 박씨 Oct 27. 2020

일부러라도 담담하게 세상을 대하기

죽음은 익숙하지 않아서

운전석에서 여자 경찰이 내렸다.

뒤따라 오던 남자 경찰은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웃 아파트 2층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 건너편에 있는 이웃 아파트는 사건 사고가 참 많다. 2주 전에는 소방차 4대가 들어가더니 오늘은 과학수사차량 4대와 병원차 1대가 들어왔다. 평화로운 평일의 어느 날, 보기 드문 광경에 나는 침대 위에 올라가서 창문 밖을 내다봤다.

 


어디서 읽은 글 중에

모든 상을 있는 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고 그리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는 특히 쉽지 않은 일이라서 담담한 척 하려고 노력한다.


할아버지 두 분과 할머니 한 분을 떠나보낼 때도 담담한 척했다. 사실 할아버지 두 분이 가시기 전날에는 내 꿈에서 좋은 모습으로 나오셨기 때문에 나도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두 분의 염하는 모습까지 가족과 지켜보며 서로 마음을 다독거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우다가 씻기 위해서 집으로 혼자 돌아왔을 때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현관문에 서 있으니 자동 센서가 켜졌고 내 눈앞에는 불이 꺼진 검은 공간이 보였다. 몇 년 간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온 내 집인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움직임이 없자 자동 센서는 꺼졌고 나는 얼른 들어와서 세 개의 방과 화장실까지 전부 불을 켜 두고 평소 보지 않는 텔레비전까지 켰다. 그날 새벽 나는 샤워할 때도 화장실 문을 활짝 열었고 잠을 잘 때는 창문까지 열어놓았다. 쪽잠 몇 시간을 겨우 자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있던 그 시간은 나에게 엄청나게 길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 금방 지나가는 그 시간이 그 날만큼은 무지하게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게 했다. 아빠 대학 동기 중에 나와 같은 업계에 계신 전무님이 마침 와 주셔서 나는 그분 덕분에 암울한 시간 속에서 회사 얘기를 하며 우울한 생각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분이 오래 계셔주기를 바랐지만 나에게 언제 연락하라면서 명함 한 장만 남긴 채 훌쩍 떠나셨다. 나는 또 인내의 시간 속에서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의 염을 하는 동안 나는 천주교인 다른 가족을 따라서 같이 기도를 해 드렸다. 할아버지 두 분이 염을 하실 때도 덤덤히 견뎠던 나는 할머니의 염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뒤 그 공간에서 나가야 한다는 몸의 신호를 느꼈다.


아주 드물게 나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멕시코의 어느 산골에서 들짐승이 치어 죽은 광경도 덤덤하게 지나갈 때가 있는가 하면 아주 가끔은 피 한 방울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 곡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반면 드라마 라이브에서 이광수가 피를 흘릴 때는 또 기분이 이상함을 느껴서 얼른 티브이를 끄고 침대에 누운 적이 있다.


나는 할머니가 계시던 공간에서 빠져나가면서 아직 정신이 있을 때 문고리의 위치를 봐 뒀다. 그리고 문 쪽으로 다가갔을 때는 이미 눈앞이 캄캄했다. 더듬거리며 문고리를 잡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만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여차하면 쓰러지겠다. 내 뒤에 아무것도 없어야 할 텐데'라는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매울 무렵 큰엄마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뺨을 마구 때리는 게 느껴졌다. 병원 복도의 의자에 앉아서 차가워진 손을 잡으니 다시 눈 앞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힘들어서 펑펑 울다가 옆을 보니 5~6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가 요구르트를 들고 한 손을 나에게 내밀고 있었다.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작은 얼굴로 머리끈과 티셔츠 그리고 바지까지 빨강, 파랑 그리고 노랑으로 신호등 색깔을 맞춤한 그 여자아이는 다 큰 어른이 펑펑 우니까 의아했나 보다. 목도 마르고 당도 떨어져서 평소에는 마사지하는데만 사용하는 그 요구르트를 한입에 다 마셨다. 그 이름 모를 아이는 내 옆에 앉아서 같이 빨대를 쪽쪽 빨면서 요구르트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마시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검은 상복을 입은 나와 아주 상반된 어린아이가 내 옆에 앉아 있으니 '이제 장례도 다 끝났구나'라는 큰 안도감이 들었다.



할머니의 장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죽음을 겪을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평일의 어느 날, 이웃 아파트에서 과학수사 차량 4대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내리더니 길에서 비닐 옷을 주섬주섬 입는 것을 봤다. 평일엔 항상 회사에 있으니 이런 모습을 생중계로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을 하다가 중간에 나와서는 비닐을 반절만 걸치고 담배를 뻑뻑 피우는 것을 보니 '저분들이 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웃 아파트는 금연 아파트가 아니라서 담배 피우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우리 아파트는 담배 피우려면 단지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2시간 이상 지난 후 시신 한 구가 병원 차에 실렸다. 그리고 그 많던 우비 소년 분들도 뿔뿔이 흩어져서 차 4대에 옮겨 타고 떠났다.


하필 내 방에서 이웃 임대아파트 2층이 훤히 보이다 보니 오늘도 몇 번이나 그쪽을 쳐다봤다. 평소엔 관심도 없던 곳이라서 원래 불이 꺼져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이웃 아파트에서는 가끔 분리수거 문제로 경비아저씨와 주민이 목소리를 높여서 싸우는 소리가 내 이중창을 뚫고도 훤히 들린다. 지나친 민폐에 엄청난 소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날 그 광경을 본 이후로는 이 싸움 소리마저도 사람 사는 '활기찬' 모습이라는 생각이 가끔은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1박 2일 마산 여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