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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31. 2020

트레이너는 본인의 운동 목표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하나? 그냥 매 시간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지


선생님 : 키우고 싶은 부위나 특별히 운동하고 싶은 곳이 있어요?

Sorita : 네! 요즘 텔레비전에 심으뜸이 나오더라고요!

선생님 : 아......

Sorita : 심으뜸처럼 빵빵한 엉덩이를 가지고 싶어요!

선생님 :......

Sorita : 역시...... 엉덩이는 타고나야 하는 거죠?

선생님 : 아니에요. 심으뜸 선수는 좀 과하게 운동하는 경향이 있지만...... 회원님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은 심으뜸 엉덩이를 가지고 싶다는 나에게 자본주의적인 답변을 했다.


10년 전 내가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땐 가슴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뒤태 열풍이 불면서 어느 순간 거의 모든 헬스장에 '뒤태 만들기' 유행이 돌았다. 하나에 꽂히면 일이든 취미든 사랑이든 앞만 보고 달리는 나는 헬스에도 금방 빠져버렸다. 나는 보통 여자들의 기준보다 강도가 센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했다. 헬스장에서 어슬렁거리면서 여성분들에게 운동을 가르쳐주기 좋아하는 아저씨들도 나한테는 말을 걸지 않았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기구들을 사용할 줄 아는 여성은 나와 전직 투포환 선수였던 한 아주머니뿐이었다.


전직 투포환 선수와 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체크해나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분은 점점 몸이 더 커졌다. 그러나 나는 부족한 체력을 기를 수 있었고 몸 전체적으로 적절한 근력을 가지게 됐다. 운동을 하면서 평소 몰랐던 내 몸 상태도 꼼꼼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무직으로 골병이 들어있던 목의 뭉친 부분을 풀고 허리 근력과 고관절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내 몸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주 5일 반복되는 일상의 변화를 위해 새로운 선생님과 운동을 배움으로써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올해만 해도 세 곳의 필라테스 학원을 거쳤다.

필라테스를 배우겠다고 했지만 발레를 전공한 선생님께 난생처음 발레를 배우면서 내 몸의 늘릴 수 있는 부분은 다 늘려봤다. 그리고 현재 필라테스 학원에서는 필라테스보다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더 많이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헬스를 한 것이 4년 전인데도 다행히 몸은 대부분의 동작을 기억하고 있었다. '심으뜸'의 엉덩이가 탐난다는 말 한마디에 선생님은 내 엉덩이가 버틸 수 있는 최대 무게로 하체를 단련시키고 있다.


개인 PT를 하다 보면 선생님과 땀을 섞는 사이가 되다 보니 감정적으로도 영향을 참 많이 받는다.

오늘따라 표정이 좀 어두워보이는 선생님을 보며 속으로 '여자 친구랑 헤어졌나?', '이 사람도 직장 슬럼프를 겪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짐짓 모른 척했다. 선생님은 1분 간 호흡을 고르며 쉬는 시간을 갖는 나에게 갑자기 본인 스스로가 운동에 대한 목표 의식이 없어져서 운동을 나만큼 재밌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선생님 : 회원님은 무슨 일 해요?

Sorita : 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고 있어요

선생님 : 일이 힘들지 않아요?

Sorita : 힘들어도 돈 벌어야죠. 돈 벌어서 운동도 하고 여기 수강료도 또 내려면요


퇴근 후 운동을 하면 일 생각을 전부 잊게 된다.

그런 거 보면 운동이 일보다 체력적으로 더 힘든 것이 분명한가 보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따뜻하게 샤워를 한 후에 잠을 맛있게 푹 자는 것. 어찌 보면 이게 나한테는 운동의 가장 큰 목표이다.


9시간 동안 꽉 채워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동안 고생한 내 몸을 주 2회 단련시키며 나름대로 보상을 주고 있다. 동료들은 내가 다양한 운동기구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집에서는 전혀 운동을 안 한다. 밀린 드라마나 너투브를 보기도 하고, 아직까지 부족한 어학 공부를 하기도 한다.


아직도 영어는 생소한 단어나 숙어가 많다. 여행 때문에 독학으로 시작한 스페인어도 아직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역병에 걸리지 않고 무사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이 소중한 요즘, 나한테는 크고 뚜렷한 목표는 없다. 그냥 매 순간 즐겁고 후회되지 않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것뿐이다. 멀리 단풍 구경은 못 가더라도 집이나 회사 근처에 화려하게 물든 단풍을 구경할 수 있고 평소 가보지 않았던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보는 것. 그리고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건강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매일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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