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도 불가능하게 된 현실
어느 날, 삼촌이 계신 부서에 내가 태어난 곳에서 온 내 또래의 친구가 입사를 하자 삼촌은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삼촌은 그 친구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힘들게 입사를 했으니 잘 적응하길 바랐다. 하지만, 본인이 생각했던 일이 아니라며 몇 달 뒤에 삼촌과 면담을 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삼촌은 신입사원이었던 그 친구와 마지막으로 밥을 먹으면서 꿈이나 목표가 어렸을 적 내가 삼촌한테 얘기하곤 했던 가치관과 너무 비슷해서 그 친구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한편 나는 아주 다른 업계로 취업을 했다. 회사 위치상 그 호텔을 자주 지나다니고 있다. 한 때 부실공사의 논란이 있었던 큰 호텔이 내 추억의 호텔 바로 옆에 또 들어섰고, 그 건물은 이제 그 지역을 뛰어넘어 서울의 상징이 됐다. 퇴근 후 석촌호수를 친구와 한 바퀴 돌다가 들어간 한 카페 바로 옆에는 L타워가 훤히 보였다. '언제 저 호텔 꼭 한번 가봐야 하는데...'라고 그 친구는 중얼댔다. 언제 한번 가보자고 약속했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 호텔에 가보지 못했다. 올해 초 인센티브로 가려고 했던 시그니엘은 상무님의 농간에 40%만 지급이 되어 무산이 됐다. 연말에라도 꼭 가보려고 했지만 코로나로 밖에서 숙박하기가 굉장히 찝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호텔의 꽃은 조식 뷔페인데 조식을 찜찜하게 먹을 순 없다. 결국 올해는 의도치 않게 해외여행 두 번의 경비와 호텔값을 절약하게 됐다.
부모님보다 더 큰 존재로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도움을 주셨던 삼촌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젯밤 지금까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일을 하며 모았던 저금 내역들을 보니 과연 나라는 사람이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고 죽기 전까지 얼마만큼이나 돈을 더 벌까?라는 의문도 생겼다.
지금은 삼촌이 아니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 호텔에 가서 숙박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년이 보장된 직업이 아니고 현재는 한 치 앞도 확실한 것이 없는 상황이기에 벌 수 있을 때 돈을 모아 놓자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코로나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삶이 불안정해졌다. 이럴 때일수록 믿을 건 내 몸뚱이 하나뿐이다. 내가 움직여야 지금처럼 월급을 받고, 내 삶이 안정적이어야 내가 보는 세상도 조금은 덜 불안할 수 있다. 이제는 내 돈을 내고 운동하는 것조차 자유로워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 꾸준히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자 한다. 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름의 방법을 찾아서 잘 살아볼 생각만 하더라.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면서까지 헬스를 하다가 다시 필라테스로 돌아왔다.
나와 동갑인 선생님께 '될 때까지 연습하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몸을 단련하고 있다.
이번 주부터 서울 시내 어디든 불이 꺼지고 블라인드가 내려진 수많은 필라테스 학원을 보니 당장 먹고 살 문제를 다들 어떻게 해결할 생각들인지 남일 같지 않게 걱정이 된다.
과연 내년 1월엔 필라테스 기구 위에서 다시 운동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