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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an 17. 2021

여성전용원룸에 살아보니

여성전용원룸엔 여성과 바퀴벌레 그리고 몰래 들어오는 남자들이 있었다

10대 후반에 나는 그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 근처에서 가장 비싸고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위치한 최신식 '여성전용원룸'에서 살았다. 2.5평 안에 샤워실과 손바닥만한 세면대가 있고, 화장실과 세탁기는 공용이었다. 엄마는 코딱지만 한 원룸이 너무 비싸다고 하셨지만 나는 책상 너머로 환한 햇살이 들어오는 나만의 공간이 매우 좋았다.


원룸 사장님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I에서 가장 큰 교회의 장로님이셨다. 그래서인지 원룸 이름도 기독교의 냄새가 가득 배어있었다. 부모님은 원룸 주인이 I에서 온 것을 아시고 무척이나 반가워하시며, 딸아이 혼자 서울에 있으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장로님은 매주 금요일 저녁은 원룸 식구들과 같이 식사를 하며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원룸 지척에는 오래된 고시원이 하나 있었다. 그 고시원에는 고시생들보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더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학교 끝나고 어학원에 갔다가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원룸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조금 넘었다. 골목길이 좁고 어두웠지만, 밤 9시 이후로는 고시원 주변을 주기적으로 순찰차가 돌고 있었고 내 원룸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대로변이었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불편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은 밖에 있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마다 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중이든, 학원에 있든지 간에 원룸 주인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장로님의 와이프분이 만들어주시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는 장로님 부부와 아들 그리고 원룸에 거주하는 몇몇 교인들과 함께 기도를 해야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사회성이 떨어질 때라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알지도 못하는 기도를 하는 것에 상당히 부담을 느꼈다. 게다가 내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았던 원룸 아저씨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금요일 저녁에 나는 내 일정이 있어서 참석을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지 않고 금요일 저녁에 함께 기도를 하지 않는 것에 상당히 언짢아하셨다. 심지어 나는 원룸을 청소하시는 교인이었던 아주머니한테까지 찍혀서 1년 정도 상당히 불편한 생활을 했다.


원룸 주인 부부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는 틈만 나면 관리실에서 기도를 하셨다. 원룸 관리는 뒷전이었고 원룸 바로 앞에 있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더 우선인 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성전용원룸'이 일반 고시원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나는 얼마 후 경험하게 됐다. 밤에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열기 전에 통로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항상 살펴야 했고 (그때는 복도에 CCTV도 없었다) 복도에는 시골에서도 보지 못한 엄청난 크기의 바퀴벌레가 기어 다녔다. 내 방과 현관문 앞에 바퀴벌레 약을 쏟아부었지만 그들은 원룸의 경계를 우습게 넘으며 이 방 저 방을 제집 드나들듯이 돌아다녔다.


20대 초반의 감수성이 여린 나였지만 바퀴벌레를 보고 언제까지나 깜짝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약을 뿌리든 때려잡지 않으면 언제든 내 공간을 다시 습격할 수 있기 때문에 내 현관문 앞에 항상 바퀴벌레 약을 2통 비치해 놓고, 5층 통로 곳곳에 뿌리거나 새끼라도 자비 없이 전부 죽였다. 하지만 바퀴벌레보다 훨씬 더 무서웠던 존재는 인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원룸 밖으로 나가면 항상 그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내 방 창가 건너편 옥상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던 아저씨와 거의 매일 눈이 마주쳐서 창문을 열어 놓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밤 10시~ 11시 사이에 두 번씩 조용히 돌아가던 문고리는 여자 혼자 서울에 사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경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던 오빠가 병장이 되자 휴가 때마다 부모님이 계신 I로 안 가고 서울에 있는 내 원룸으로 놀러 왔다. 2.5평의 좁은 공간에 오빠랑 단둘이 있으면 방이 꽉 찼다. 하지만, 밤 11시에 원룸으로 돌아오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에도 오빠가 집에 있다고 생각을 하면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나보다 다리 많은 벌레를 더 싫어했던 오빠는 바퀴벌레도 전부 잡아줬고 밤에 공용화장실을 갈 때면 현관문을 열어 놓고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도 오빠는 휴가 때 군복을 입고 문경에서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엄청나게 두꺼운 군복을 세탁기에 돌려서 탈수를 했는데도 겨울 군복의 무게는 상당했다. 웬만한 옷걸이가 휘어질 정도라서 나는 의자에 오빠 군복을 걸어서 말렸다. 왠지 내 방 안에 군복이 걸려 있으니 안전함을 보장하는 '부적'하나가 내 등에 든든히 붙어 있는 기분이었다. 오빠랑 나는 당시 가장 핫했던 미드 '로스트'를 나란히 앉아서 노트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빠에게 그동안 원룸에서 있었던 얘기를 했다.


Sorita : 밤 10시~11시 사이에 내 방 문고리가 두 번씩 돌아간다? 어쩌면 오늘 밤에도 문고리가 돌아갈지도 몰라......

오빠 : 어떤 미친 *끼인 거야~ 잠이나 잘 것이지 남의 방 문고리는 왜 건드려? 걱정 마! 오빠가 있는데 뭘!

Sorita : 처음엔 엄청 무서웠거든. 실제로 보면 소름 돋는다? 문 잠그고도 정말 잠겼는지 한 다섯 번은 확인하고 자는 거 같아  


그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현관문에서 '척' 하고 뭐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오빠랑 나는 동시에 현관문을 쳐다봤고 나는 이 문고리 사건도 바퀴벌레처럼 잡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사건이라는 생각에 오빠가 있을 때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내겠다고 문을 열기 위해 서둘러 일어났다. 그 순간 오빠가 다급하게 내 손목을 잡으며 소리쳤다.


오빠 : 열지 마 열지 마 열지 마!!

Sorita : 왜? 잡아야지!!! 우린 둘이고 저긴 혼자일 거야!

오빠 : 무서워... 칼 들고 있으면 어떻게...


부모님은 서울에 나 혼자 있는 것보다 휴가 때마다 오빠가 서울에 올라가 있는 것이 훨씬 안심이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오빠는 생각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결국 그날 밤 우리 둘 다 밖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고 그다음 날 오빠는 문경으로 가는 길에 문단속 잘하고 일찍 일찍 다니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났다.


갑자기 문고리 에피소드가 생각난 이유는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나처럼 '여성전용원룸'에 살던 어떤 여성분의 에피소드를 듣고 '이런 일이 나한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여성분은 침대 위에서 정체 모를 남자의 두 손목을 잡고 밀쳐내서 봉변당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분은 방송에서 그 남자의 손목이 본인의 손목보다 얇았다고 웃으면서 얘기를 했다. 하지만, 과연 자다가 그렇게까지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여자가 실제로는 몇이나 될까? 그 남자는 20대 군인이었고 술에 취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해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 그 사람이 신고했다고 보복을 하러 다시 찾아오면 그 여자는 누가 지켜줄 것인가?


'여성전용원룸'을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이 이 글을 보면 썩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5년 동안 내가 원룸에 살아보니 일반 원룸보다 '여성전용원룸'이 절대로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원룸에서 살면서 '~했을 뻔한' 아찔한 에피소드를 몇 가지를 가지고 있는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에피소드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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