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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an 24. 2021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나요

옆에서 본 커플 이야기

독일을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있었다.

남자는 독일에 유학을 온 사람이었고, 여자는 한 외국계 항공사에서 일하는 승무원이었다. 여자는 독일에 가끔씩 체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여자는 남자보다 3살 연상이지만, 두 사람은 '독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독일에 체류할 때마다 가끔 만나는 그 애틋함이 매우 좋았다. 먼 타지에서 서로 외로웠을 결혼 적령기의 두 남녀는 서로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독일에서의 꿈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가 다니던 항공사는 코로나의 직격타를 맞았다. 결국 여자는 10개월째 무급휴직의 상태로 들어갔다.


어느 날 남자는 나에게 물었다.

여자가 체육교육과를 나왔고 영어를 잘하니 함께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차마 같이 일을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남자는 이미 본인 스스로 결정을 내렸고, 나에게 그에 대한 긍정의 대답을 받고 싶은 거였기 때문이다. 얼마 후 남자는 여자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여자는 남자의 사업장을 청소해주고, 집에서 식사까지 준비를 해 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슬슬 사업에 타격을 받고 있던 남자가 이미 항공사에 사표를 낸 여자와 함께 사업을 한다는 건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웃을 일이 많지 않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어느 날 남자는 독일에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서로가 맞지 않는 줄 몰랐다며 함께 있는 시간이 괴롭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여자는 승무원으로 일하는 10여 년 이상의 세월 동안 직업병인지 먹으면서 바로바로 치우는 버릇이 있었다. 반면 남자는 일을 하고 나서 밥을 먹는 시간만큼은 차분하고 조용한 시간을 가지길 바랐다. 즉, 남자는 밥을 먹는 와중에 여자가 식탁을 정리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자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남자 친구가 올 시간에 맞춰서 소고기 250g을 미리 구워 뒀다. 여자 친구의 성격을 잘 아는 남자는 여자에게 카톡을 보내서 '절대 고기를 미리 구워 놓지 말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가 우려했던 대로 여자는 소고기의 절반을 전부 구워서 접시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차갑게 식어서 딱딱해져 버린 소고기를 다 먹지도 못하고 결국 식탁 앞에서 두 사람은 화를 내고 싸웠다. 남자는 '관계가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라며 내 앞에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미 여자 친구와 반동거 비슷하게 지내고 있는 남자에게 나는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할 것인지 물었다. 남자는 여자가 장난 삼아 결혼 얘기를 서너 번 꺼낸 적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은 확신이 없었다. 그 말 끝에 나는 뭐라 더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두 사람 각자의 마음속에 이미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서로를 배려한답시고 누가 먼저 말을 꺼낼 것인지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셀린과 제시처럼 비엔나에서는 누구나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비엔나는 그만큼 완벽한 도시다. 비엔나에서 멀지 않은 독일에서 사랑을 나눴던 두 남녀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의 기준은 바뀐다. 10대의 사랑이 다르고 20대가 추구하는 사랑이 다르고 30대가 바라보는 사랑은 다르다. 40대가 되면 또 달라지겠지?


작년 말부터 3주 이상 남자의 불 꺼진 사업장을 볼 때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번 주부터 다시 문을 열게 된 남자의 사업장 안에서 두 사람은 웃으며 다시 파이팅을 외칠 수 있었을까? 세상에 의미 없는 시련은 없다고 하니 서로의 다른 점은 각자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잘 극복해 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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