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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an 30. 2021

2021년 1월 마감 소회

Copito를 추모하며

2020년 마지막 날, 화상 회의를 하던 도중에 M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M : 소 과장님, copito 죽었대요

Sorita : 헉 정말요? 언제요?

M : 몇 달 전인가 봐요... 그래서 안 보였던 거라고...


회사 근처 작은 공원 수풀 속에는 copito가 항상 잠을 자고 있었다. 곤히 잠든 얼굴을 보고 지친 일상에 위로를 받은 적이 많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copito가 보이지 않았다. 바쁜 일상에 언제 한번 내 고양이를 찾아봐야지 라고 마음만 먹었다. 하지만, 작년 12월 31일에 M은 동네 주민에게 길냥이 copito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2년 간 회사에 있으면서 침몰하고 있는 타이타닉 속 주인공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뛰어내릴까, 아니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끝까지 살아있다가 배와 함께 가라앉을까.


소사원 4년 차 일 때, 따뜻했던 봄의 기운이 가득했던 어느 날, 회사는 직원 전체 메일로 '비상경영'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비상경영이니 직원들의 월급을 8개월 동안 ** % 줄이고 (직급에 따라 월급을 떼이는 %가 달랐다) 그 해 12월 월급에 8개월 간의 밀린 임금을 한꺼번에 정산해 주겠다고 했다.


그 공지 메일 이후 몇 개월 사이에 참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하거나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떠났다. 나 역시 하던 일은 더 늘어만 가는데 월급이 **만 원씩 적게 들어오니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승승장구하던 회사가 처음으로 휘청대고 업계에 안 좋은 소문이 떠도니 거의 전 직원들이 불안에 떨었다. 몇몇 임원들이 원했던 구조조정이 알아서 이루어지자 회사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줄었고 덕분에 살림살이는 다소 나아졌다.


물론 나도 그만두고 싶었다. 장담하건대 사표를 내고 싶다는 갈망은 그 누구보다 작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끝이 보이면 참는 편이다. 몇 개월만 더 버티면 5년 근속으로 보너스가 나오고 대리의 직급을 달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버텨 보기로 했다. 4년을 넘게 참았는데 8개월의 시간은 충분히 인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소사원 월급에서 **% 떼어가는 금액 정도는 내 생활에 큰 지장이 없었다. 그냥 'ㅈㄴ' 짜증이 날 뿐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고 8개월의 시간은 금방 흘렀다. 그리고, 나는 밀린 임금을 1원의 오차도 없이 한꺼번에 받았다. (그 당시 회사를 그만뒀던 많은 사람들은 막상 12월이 되면 회사에서 다른 핑계를 대고 밀린 월급을 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후로 '비상경영'이라는 단어를 5년 동안 더 듣고 살았다.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는 당장에라도 회사가 망하는가 싶었는데, 회사는 골골대면서도 쉽게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내가 속한 부서는 '노아의 방주' 같았다. 회사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내가 속한 부서는 거센 파도 속에서 뒤집어지지 않고 아찔한 순간과 고비를 잘 넘겼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노아의 방주'안에 있던 조직원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잘한 다툼은 끊이질 않았다. 결국, 못 견디고 그만두는 직원들이 매년 생겨났다. 나 역시 그만두고 싶다는 충동을 거의 매일 느끼며 살았다. 일을 꾸준히 해왔다고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갈등을 푸는 요령이 점점 늘어갈 뿐이다.


작년 연말부터 2021년 1월 마감하는 오늘까지도 만만치 않은 업무의 연속이었다.

마치 앞으로 남은 11개월치의 일어날 사건들이 액땜하듯 첫 달에 몰아치는 것 같았다. 퇴근해서 잠을 자려고 누우면 꿈속에서도 일을 하고 심지어 화상 회의도 했다. 골골대면서 겨우 출근을 해서 만난 상무님의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5겹으로 주름진 그의 이마와 다크서클을 보면 '저 양반도 간밤에 잠을 못 이루고 나랑 꿈에서 회의를 했나'라는 의심이 들었다. 밤낮없이 울려대는 회사 카톡은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래도 그다음 날 나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아침 7시에 지하철을 타고 반복적인 출근을 12년째 한다.


이런 일상에서 스스로 마음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가 사무실 근처 세탁소 강아지랑 놀거나 길냥이를 보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근속했던 기간은 그들의 수명과 비슷했다. 회사를 다니는 도중에 강아지 두 마리가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작년에는 애정 하던 길냥이 copito도 세상을 떠났다.


어쩌다 보니 그들의 생애보다 더 긴 시간을 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 이 조직에서의 내 삶은 끝이 난 게 아니다. 앞으로도 생활하면서 올해 1월과 같이 무수히 많은 변수와 머리 아픈 일들이 생겨나겠지만 2021년 12월의 끝자락에 왔을 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는 한 해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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