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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Feb 14. 2021

스위스에 갈 수 없다면 스위스 레스토랑이라도

빨간 날에는 무조건 쉬는 자와 그 날에도 일하는 사람은 서로가 신기하다

Y를 보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내가 Y의 나이였을 때, 사는 게 너무나도 힘이 들어서 해외여행으로 그동안 쌓인 '화'와 '불만'을 해소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용기 있고 결단력이 있어서 연고지도 없는 해외를 자유여행으로 잘 다닌다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여행을 갔다가 한국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이번 여행이 내 삶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출국을 했다. 다소 무모했지만 언제든지 인생의 마지막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고, 해외여행을 하다가 그곳에서 죽더라도 '이것 또한 내 운명이 거기까지다'라고 마음을 먹으니 비행기에 탑승하기가 다소 쉬웠다.


항상 삶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살다 보니 내가 Y의 나이였을 땐 평소에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고백까지 망설임 없이 거의 다 했다. 그래서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특별히 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내 인생을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Y를 통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민들과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그와 연락을 할 때마다 드라마 '시그널'처럼 과거의 나에게 무전을 치는 듯한 재밌는 상상도 해본다.


보통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Y한테 카톡을 보내 놓고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에 메시지가 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날은 어찌 된 일인지 Y가 바로 답을 보냈다. Y는 작년부터 본인이 가고 싶었던 근무지로 오게 되었고 그 날이 새로운 곳에서의 첫 출근일이라고 했다.


Sorita : 거긴 내 나와바리인데! 거기서 일할 거면 나한테 말해야 하는데 왜 얘기 안 했어?

Y : 아! 말을 안 했군요! **로 결국 왔어요 ㅋㅋ

Sorita : 내가 1주일에 거의 한 번씩 가는 곳이기도 한데... 너 어떻게 일하고 있나 찾아봐야겠다.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Y : 별거 없습니다 ㅋㅋㅋㅋ 애 같을 거예요. 몰래 숨어야겠네요

 

Y는 우리 사무실 막내보다 한 살 더 어리긴 하지만 애 같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 길에서 떡볶이를 먹고 계산할 때 "떡볶이 2인분 하고 어묵 두 개 먹었고 튀김은 뭐 먹었더라......"라고 부왕부왕하는 와중에 Y는 중간에서 내 말을 가로막고 "4,500원이요!"라고 크게 외쳤다. 서로 계산을 못하고 있던 주인아주머니와 나 사이에서 Y는 깔끔하고 간결하게 상황을 정리해줬던 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게 문과생과 한 때 수학 선생님이 꿈이었던 이과생의 차이인가 싶기도 하다.


Sorita : 거기서 일하면 언제든 시간 맞춰서 보자. 우리 집에서 네가 이렇게나 가까이 일하게 될 줄 몰랐네

Y : 4시가 퇴근인데 그때 볼까요?

Sorita : 그려~ 그때 보자


Y는 새로운 근무지에 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근처 맛집을 많이 알고 있었다. 본인이 안내하겠다면서 지난번처럼 식당 4곳을 카톡으로 순식간에 보냈다. 이 중에 끌리는 곳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내 구역이라고 칭할 만큼 아주 잘 아는 동네였지만 Y가 보내준 레스토랑 네 군대 중에 단 한 곳도 가본 적이 없었다. 잠깐 고민 끝에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으로 여행을 취소했던 국가, 바로 '스위스'레스토랑을 골랐다.


는 여행을 딱 두 번 취소해 봤다.

첫 번째가 작년의 영국행 항공을 취소한 것이고, 두 번째가 소사원일 때 중남미 출장 일정과 엄마와 함께 스위스에 가기로 한 일정이 겹쳐서 항공권을 어쩔 수 없이 취소했던 때였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오빠와 나를 다 키워놓고 나면 스위스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어느 날, 엄마는 한 달 생활비 절반 정도의 금액에 달하는 일본에서 제작된 비싼 여행 서적을 구입하셨다. 엄마는 스위스의 융프라우 사진을 가장 좋아하셨다. 책자의 인쇄 상태가 매우 좋아서 알프스 산맥과 동화 같은 마을이 어린 나에게도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엄마는 죽기 전에 다른 곳은 안 가봐도 알프스 산은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이미 발권해 둔 스위스행 항공권 티켓이 100% 환불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빠는 브라질이 위험하니 그런 곳으로 출장 가지 말고 일정대로 엄마랑 스위스를 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스위스는 언제든 다시 갈 수 있지만 중남미는 평생에 거의 없는 기회이니 브라질에 가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스위스행 왕복 항공 티켓 2장을 취소했다. 언젠가 스위스에 다시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중남미 출장을 다녀온 이후 5개월 뒤에 스위스 대신 멕시코로 휴가를 떠났다. 그 이후로도 여행은 유럽이나 콜롬비아, 중국 그리고 일본으로 가게 됐고 코로나 영향으로 지금까지 스위스는 꿈의 여행지로 남게 됐다.


Sorita : 이번엔 스위스 음식 먹으러 가자. 나 스위스 아직 못 가봤거든. 음식이 어떨지 엄청 궁금하네

Y : 그럽시다! 11일 16시 45분에 **에서 봅시다!

 

Y는 아직 막내라서 혹시 나를 보게 되더라도 아는 척을 못할 거라고 했다. 항상 씩씩하고 남자답다고 생각했던 Y는 의외로 근무복 입은 모습을 내가 볼까 봐 유난히 쑥스러워했다. 카톡에서 쩔쩔매는 그의 모습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만나기 바로 전날 Y에게서 카톡이 왔다.


큰일이네요. 혹시나 해서 전화해보니 내일 영업을 안 한다는......


우리가 가기로 했던 레스토랑 후기가 매우 좋아서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연휴엔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나는 스위스도 못가보고 한국에 있는 스위스 레스토랑조차 갈 수가 없게 됐다. 올해 백신을 두 방 맞고 면역력이 생기면 내년에는 스위스에 갈 수 있을까? 어렸을 때 고고학자의 꿈을 키워준 페루의 마추픽추도 막상 가보니 가슴이 터질 만큼의 환호성이 나오진 않았다. 알프스 산도 책에서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 스위스에 가서 하이디처럼 포즈를 잡고 인증사진을 찍고 싶다. 일단 스위스 맛보기로 조만간 Y가 알려준 레스토랑은 꼭 가봐야겠다. 어쩌다 보니 레스토랑 가는 일이 올해의 'to-do-list'에 포함되어버렸네.


Y와 만나기로 한 그 날, 나는 2시간 전에 우리 집 원두를 책임지는 한 로스팅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여유 있게 즐겼다. 창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서 책도 읽으니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Y도 칼퇴는 쉽지 않았다. 만나기로 한 시간에서 5분을 더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이 커피 얼음이 다 녹아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회신했다


Y는 스위스 레스토랑 대신 한 카페를 찍어서 나에게 보냈다.

새로 근무지를 옮긴 곳은 점심이 아주 잘 나와서 저녁을 먹지 않아도 든든하다고 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온 사람한테 물만 먹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연휴 동안 문을 연 식당이 없는지 살피면서 약속 장소로 걸었다. 마침 카페로 가던 길에 손님 하나 없이 텅 빈 식당 하나를 발견했고 카페에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Y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왼쪽 음식을 고르기 전에 Y는 주방장에게 순살치킨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우리는 음식 두 개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가격 대비 정말 맛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번에도 재방문할 의향이 있다


Y가 피곤할 것 같아서 밥만 먹고 헤어지려고 했지만 그는 커피를 나보고 사라고 했다. 문을 연 카페를 찾아서 걷던 중 Y는 그의 새로운 나와바리도 알려줬다. 그리고 그날 근무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작년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로 구성된 팀원들 얘기 그리고 작년에 일하면서 가장 힘들고 당황스러웠던 사건들도 담담하게 말했다. 일이 고단하지 않냐는 내 물음에 항상 견딜만하다고 답을 했던 그였지만 사실상 Y의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눈여겨봤던 카페에 가서 나는 청포도 주스, Y는 하우스 와인을 시켰다. 이번에도 도촬 후 Y에게 사진을 보내줬다.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내가 딱 Y의 나이였을 때, 삶의 무게가 나만 이렇게 무거운 건가 싶어서 어두운 밤에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이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어두컴컴한 밤거리가 꼭 내 마음속 같아서 목적 없이 걷던 그 길에는 발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다행히 지금은 그때 가지고 있던 수많은 생각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많이 해소가 되었고, 현재의 나는 내 어깨에 나 자신이 짊어지고 갈 수 있을 만큼의 무게만 가지고 살고 있다.


Y와 나란히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늘이 파란빛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하얀빛을 띠기도 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Y와 달리 빨간 날엔 무조건 쉬는 나는 꿈같은 이 시간을 더 즐기고 싶었다. Y가 버스 타고 가는 걸 배웅해 주고 나서 나 혼자 내 나와바리를 한 바퀴 더 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Y의 나와바리도 된 그곳을 나 혼자 걷게 내버려 두진 않았다. 그는 내가 지하철 개표구에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난 후에 다음을 기약하며 선비처럼 훌쩍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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