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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Feb 08. 2021

안개 낀 새벽의 사대문 안 서울거리에서

그래도 주말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주말의 새벽, 회사일이나 친구와의 약속으로 일찍 집 밖을 나섰을 때의 사대문 안 서울 거리는 몽환적이었다. 새벽 거리를 걸어본 사람만이 이 느낌을 안다. 금요일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던 서울 사대문 안 수많은 사무실과 도로를 가득 메우던 차들도 주말의 이른 새벽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낮과 저녁의 서울 모습만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벽의 서울 분위기는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평일의 수많은 인파를 품고 있느라고 가슴이 터질 듯 숨을 참고만 있었을 것 같은 시청 앞 광장도 새벽만큼은 고요하다. 서울 시청 앞 잔디밭과 대로변에 깔린 짙은 안개가 마치 간밤의 노곤함을 토해낸 흔적 같기도 하다. 서울의 새벽 거리를 걷다 보면 빨간빛과 파란빛을 내는 순찰차가 곳곳에 눈에 띈다. 강렬한 두 불빛은 짙은 안갯속에서도 존재감을 나타낸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는 반짝거리는 경광등도 새벽 시간만큼은 다소 황량한 이 거리에 나 말고 깨어있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생존 신호 같아서 유난히 반갑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2명씩 짝을 지어서 정답게 대화를 하며 지나가는 경찰들이 눈에 띈다. 베이커리 카페 안의 주방에서는 작은 빛을 내며 하루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거리를 청소하시는 분들은 이미 일을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하신다. 그들을 제외하면 비싼 서울 땅덩어리를 내가 통째로 빌려서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간밤에 쌓인 매연과 먼지가 콧등에 닿아서 다소 매캐한 맛이 맴도는 서울의 새벽 거리는 안개에 싸여서 가까운 건물이 멀어 보이기도 하고, 먼 건물이 가까워 보이게도 만드는 착시 효과가 있다. 목적 없이 안개 낀 거리를 걷다 보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오른다. 작가는 무진에 와서 하인숙이라는 여자를 만나 단시간에 사랑에 빠진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드러내지도 못한 채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제약 회사 전무라는 현실로 돌아오는 주인공과는 달리 나의 안개 낀 '서울기행'에는 아직까지 그런 로맨스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평일 근무 시간에는 한겨울에도 곧 죽어도 '아이스라테, 아이스 카푸치노'만 마시는 내가 주말의 다소 쌀쌀한 새벽에는 따뜻한 플랫화이트를 마신다. 아침 9시 전에 문을 여는 카페가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사대문 안 서울 거리에는 새벽에 문을 여는 베이커리 카페가 몇 군데 있다. 오픈하자마자 들어간 그 카페에는 갓 구워낸 빵들이 진열을 기다린 채 풍미가 짙은 버터향을 사방에 가득 풍기고 있다. 바질향과 치즈맛이 섞인 스콘과 까무잡잡한 까놀레를 따뜻한 커피와 마시는 순간 이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한 주간의 고단함을 토해내듯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과 동시에 따뜻한 커피를 몸 안으로 밀어 넣으며 정신을 조금씩 깨워본다. 그때만큼은 핸드폰도 보지 않고 빵과 커피의 맛에 조금 더 집중하면서 천천히 맛을 음미해 본다.


카페에서 식사를 마친 후 밖을 나서면 뿌옇던 안개가 걷히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모닝커피 한잔 하기 위해 이제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아직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찾아서 목적 없이 돌아다녀본다. 고작 몇 시간 일찍 하루를 시작했지만 남들이 이제야 하루를 시작할 때쯤 집으로 돌아오면 그 날은 하루를 덤으로 더 얻은 듯 긴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좋다.


모닝커피는 집에서 기분에 따라 원두를 골라서 내려마시는 편이지만 가끔은 전문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는 것도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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