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니까
너도나도 파이팅
'빨간 날'을 제외하고는 달력에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 날들은 나에게 의미 없는 날이었다.
살면서 여성의 날을 딱히 기념해 본 적은 없다. 매년 해외 거래처에서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메시지나 동영상을 보내주면 '아, 오늘이 그런 날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단순하게 넘겼다. 그런데 유독 올해는 '여성의 날'에 떠들썩한 일들이 있어서인지 부끄럽게도 그제야 나는 그 날의 의미와 존재를 알게 됐다.
며칠 전 한 사이트에 올라온 '면접'과 관련된 내용에 이어서 '여성의 날'에 하루 종일 인터넷에 한 기사가 떠 있었다. 안타까운 두 기사를 읽고 잠시나마 생각에 잠겼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2031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은 또 발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될 여성뿐만이 아니라 정년까지 일을 하게 될 나를 포함한 모든 여성들에게 이 사건들을 일반화시켜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다.
나 역시 신입사원이었을 때 회사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질문들을 정말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불필요한 질문은 거의 없었다. 회사 입장에서도 생판 모르는 면접자를 불러서 굳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할 이유는 없다.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질문하지 않을 것이고 회사 내 여성의 비율이 높은 곳에서 '군 복무나 군 경력을 인정해서 월급을 더 주는 것'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묻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그 당시에는 '왜 내 옆에 앉아 있는 저 오빠한테는 이 질문을 안 하고 나한테만 이것을 물어볼까? (그땐 어딜 가나 내가 최연소 면접자였다) 내가 여자라서 합격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매번 했다. 내가 오빠들보다 충분히 대답을 잘했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을 땐 '내가 여자라서'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내가 왜 떨어졌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너무 오래 생각을 하고 절망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면접을 보고 나면 내가 어떤 특정한 질문에 대해서 아쉽게 대답을 했거나, 아예 대답을 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질문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만들어봐야 한다. 또 다른 회사 면접에서 그와 비슷한 질문이 언제든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면접이 끝나고 회사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이미 모든 것은 결정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한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의 연락을 받고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직전까지 우리는 어떠한 회사에 가서도 현명하게 대답을 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 한다.
때로는 압박면접을 겪은 후 불쾌함을 가지고 돌아 나오거나 집에 오는 길에 눈물까지 흘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경력직으로 면접을 보러 온 한 여자분이 회의실을 나서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던 이야기를 브런치에 적은 기억이 난다. 나는 어쩌다 보니 이 업계에 와서 1N 년 간 근무를 하고 있지만 신입일 때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불러주는 곳은 거의 다 면접을 보고 다녔다. 그때는 대부분의 질문이 압박면접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쌓아온 경험 그리고 연령도 다르기 때문에 어느 특정 회사 면접 스타일이나 난이도를 딱 잘라서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압박면접이라는 것을 간신히 통과했다고 해도 회사에서 실전으로 일을 해 보면 압박면접 따위는 면접관과 농담 따먹기 수준이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어쩌면 압박면접이라는 것도 그 회사나 부서의 분위기를 면접자가 버틸 수 있는지, 장기적으로 함께 일을 할 수 있는지를 회사 차원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판단해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사내에서 일어나는 남녀 간의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왜냐하면 제삼자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상황들을 봤을 때 피해를 보는 쪽은 여성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기사에 떴던 그 여성분이 내부 게시판에 썼다는 그 글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대강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이 간다. 왜 여성만 피해를 봐야 하는지, 손가락질을 당하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쪽은 여자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을 해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아무래도 대부분의 회사 조직이 아직까지 남성의 비율이 높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반대로 여자가 더 많은 조직에서 여성의 입김이 더 센 회사에서는 남성의 이직률도 상당히 높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 나와 일하는 몇몇 거래처의 남자 직원들은 이와 비슷한 이유로 심각하게 이직을 고민 중이거나 퇴사를 결정했다.
회사 내에서는 남녀 간에 정말 아무 감정 없는 동료애가 있을 수 있고, 척박한 사무실 속에서 한 줄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이성교제도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심지어 불륜도 있다. 다른 회사를 다니는 내 친구들이나 나와 같은 업계에서 인사팀 소속에 있는 친구를 통해 들은 얘기들까지 종합해보면 회사 내에서 상대방과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나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이상 퇴사하는 쪽은 대부분이 여자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도 있는 곳'이 회사이니 이왕이면 본인 스스로가 좀 더 조심한다고 해서 전혀 나쁠 것이 없다는 얘기다.
불경기에 취업이 쉽지 않고 매일같이 메인뉴스를 장식하는 기사들을 보면 '정직하게 매달 나오는 월급을 저금하며 열심히 사는 것은 바보다'라며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도 안타까운 현실에 절망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와 다른 의견에 악플을 달면서 편 가르기를 하며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이 시간을 나 스스로의 발전과 성취를 위해 집중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딜 가나 적응이나 개선에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개선에 대한 의지가 1도 없으면서 심지어 비관적이거나 모든 것에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왕이면 어두운 밤거리를 무서워하거나 주저앉아버리기보다는 휴대폰의 작은 불빛이라도 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되고 안되고는 이러한 작은 마음가짐에서부터 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