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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r 09. 2021

죽음의 형태에 대하여

오늘도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지

어렸을 땐 사람이 죽으면 백설공주처럼 왕자님의 키스를 기다리면서 편안한 표정으로 가지런히 누워있는 모습이 전부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내가 경험한 죽음의 전부였고, 그분들의 마지막 모습은 손이 아직 따뜻하고 얼굴은 평온해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성장하면서 조금씩 경험하게 됐다.

내가 구독하는 한 작가님의 글을 통해서도 2년 전에 간접적으로 느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돌아가신 분보다는 그 현장을 보고 충격받았을 나의 작가님 안부에 더 신경이 쓰였다. 나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작가님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현장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너튜브 알고리즘 때문인지 갑자기 '특수 청소'하시는 분의 영상이 떴다.

고독사나 자살 현장을 청소하시는 분이셨고 '시청에 주의하라'라는 당부의 글이 동영상 맨 앞부분에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에 보기 시작한 그 영상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모자이크 처리 하나 없는 영상을 보면서 왜 이렇게 집안에 파리가 많고 벽과 바닥을 다 뜯어서 청소를 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설명까지 들었다.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인간의 끝이 이럴 수는 없다고 부인하고 싶어서였을까? 자살 현장을 봤으니 고독사는 조금이라도 다를 거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동영상을 클릭했다. 하지만 사인만 다를 뿐 집에서 홀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상은 거의 비슷했다. 사고사를 제외하고는 방 안이 몹시 지저분했고 어떤 영상에서는 방 안에 복권이 한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1) 왜 이렇게 방이 지저분할까? (수백 장의 복권이 전부 당첨된 것은 아닐 텐데 왜 버리지 않고 그대로 뒀을까?)

2) 각종 고지서가 서랍 안에 쌓여있었다 (고지서에 적힌 돈을 송금하고 나면 혹시라도 두 번 내는 일이 생길까 봐 바로 찢어서 폐기하고 있는 나로서는 다소 신기(?)한 느낌도 들었다)

3) 이 방을 벽과 바닥을 다 뜯어서 청소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와서 살 수 있을까?


그 방 안에 수북이 쌓여있던 몇 백장의 복권을 사려고 지불한 금액이 총 얼마나 될까? 차라리 그 돈으로 근사한 밥 한 끼를 자신을 위해 대접하면서 어제와 다른 오늘의 기분을 느껴보는 건 어땠을까? 내가 그 사람의 전부를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어쩌면 이 또한 나만의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쫄보 주제에 이런 영상을 보고 감당도 못할 거면서 나는 많은 영상 중에서 딱 3개를 봤다. 그리고 한밤중에 굉장한 혼란에 빠졌다. 혹시라도 너튜브를 보는 중간에 엄마가 들어오실까 봐 문도 잠그고 조용히 봤다. 그런데 갑자기 내 방에서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아로마 오일을 꺼내서 내 코 밑과 귀 밑에다가 듬뿍 발랐지만 이미 영상은 내 정신세계를 가득 지배했다. 머리를 손질하다가 몇 가닥 빠진 내 머리카락을 보고 새삼스럽게 소름이 돋았고, 방 한편에 자리 잡은 귤나무에서 날아오른 깔따구 한 마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영상을 보고 나니 밤 11시, 내가 잘 시간이었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서 자려니 걱정이 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만 봐도 그날 밤엔 악몽에 시달리는데 '오늘 밤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까? 오늘 밤에 잠을 자고 그다음 날 살아서 출근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내 침대 시트는 깨끗한가? 만약 언젠가 내가 이렇게 죽는다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근을 할 이유가 있나?'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숙면을 도와주는 라벤더 오일 덕분인지 그날 밤엔 평소보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다음 날에 출근해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을 하니 불편한 감정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 이상 뉴스에 나오는 이런 사건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영상 속 청소하시는 분께서 이 곳이 구독자분의 아버지 집이라는 얘기를 듣고 본인도 놀랐다고 했다. 구독자도 설마 본인의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던 그 영상을 보고 나니 처음 그 현장을 맞닥뜨리고 일을 해야 하는 분들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을 하게 됐다. 만약 나라면  문을 따고 들어갈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소과장으로 일을 한 1N 년의 짬밥을 가지고 그 현장에 간다면 도착하기도 전에 어떤 상황일지 머릿속에서는 전부 예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의 잊고 지냈던 작년 어느 겨울, 이웃 아파트에 과학수사 차량 4대가 왔을 때 수십 명의 우비소년분들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모습도 떠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설마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어렵다, 성공하기 쉽지 않다' 하는 창업에 도전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잃었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주식에 투자한다. 특수 청소하시는 분의 시선에서 찍힌 그 영상을 보고 나니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장담도 못하겠고, 앞으로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됐다.


요즘도 가끔씩 그 영상이 너튜브 메인에 뜬다.

하지만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에 쓸데없는 상상은 고이 접어두고 앞으로 그런 영상은 절대 보지 않기로 했다. 내가 평소에 즐겨보던 너튜브는 본인의 일상을 뜻깊고 열심히 사는 브이로그나 좋은 강연들이었다. 아직까지 그런 식으로 내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기에는 내 인생을 좀 더 발전시키고,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며칠 뒤 다가온 주말에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고 싶었다.

누구라도 만나서 다들 즐겁고 활기차게 삶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아빠가 대학생 때 자취를 했던 서대문구에 위치한 독립문역에서 내리니 '안산자락길'이라는 둘레길 코스가 있었다. Y가 둘레길에 여자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하다고 우려한 것과 달리 서울 시내의 둘레길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그곳에도 곳곳에 내 위치를 알 수 있는 번호가 있었고, 공중 화장실 안에는 위급한 상황 시 벨만 누르면 도와주러 오겠다는 스티커도 붙어있었다. 적어도 이 곳에서는 사람들이 고독하게 죽지는 않겠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데크길도 잘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딱히 힘든 점 없이 서울 시내를 구경하며 걸었다. 평소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지만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 머릿속엔 다시 긍정적인 생각들로만 가득 차게 됐다.


급경사 없이 데크길을 따라 걸으면 서울 시내를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건너편에 인왕산이 보였다. 조만간 인왕산 둘레길도 가 볼 생각이다


정말 오랜만에 두꺼비를 봤다. 두꺼비가 새끼를 업고 가던데 '너네들도 한 생명체로서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감개무량했다. 맛있는 치즈케이크와 음료를 마시는 그 순간도 좋았다


홍제역 3번 출구 방향으로 내려와서 별다방에 왔다.

지난주에 회계 감사로 고생하던 서대리를 1주일 간 도와줬더니 그가 감사의 표시로 별다방 쿠폰을 보내줬다. 나는 딸기가 듬뿍 들어간 요구르트를 벤티 사이즈로 주문하고, 평소에는 먹지 않던 달달한 치즈케이크도 함께 시켰다. '이 맛있는 걸 왜 이제야 먹어봤을까?'라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귀 밑까지 올라갈 정도의 행복을 느꼈다. 맛있는 것은 혼자만 먹을 수 없으니 집에 가는 길에 케이크 두 개를 포장해서 갔다.


내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는 몰라도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세상은 아직도 이렇게 볼거리가 많고,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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