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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ug 18. 2022

회장과 나

나도 천억 넘게 벌고 싶다

나는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입사해서도 사원-대리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현재 내가 소차장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사원이었을 때의 내 모습은 이랬으니까.


나는 한 명이고, 하루는 24시간이고, 일하는 시간은 주 5일인데 능력에 비해서 왜 이렇게나 다양한 국가와 일을 하면서 힘들어하는지 고민이 많았고 자책도 했었다. 모든 것이 내 마음 같지 않았고, 항상 나의 결정은 윗사람들의 생각보다 못함을 드러낸다는 것이 부끄럽고 한심했다.


나의 모자람을 드러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조직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망가자. 캐리어 하나에 간단한 화장품과 속옷 그리고 그동안 모아놓은 월급만 가지고 외국으로 떠나면 해방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때는 몇 년 모아놓은 그 돈이 내 또래에 비해 많다고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1*년의 세월이 흘러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했던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나 자신에게 고백하건대 지금의 나는 내 모습이 자랑스럽다.


작년에 Y군이 예언이라도 하듯 내 사주에 역마살이 많다고 이야기했던 것들이 마치 경고처럼 느껴질 정도로 올해는 회사 내에서 이동이 많았다. 얼마 전 나는 또 이사를 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회장과 같은 공간에 있다. 내가 속한 조직이 회장 직속으로 편입이 되면서 나는 회장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좀 더 많아졌다.


회장 : Sorita야, 앞으로 해외 사업을 더 잘해야 하지 않겠니?

나 : 네, 7월 달에 저희 부서가 회사 통틀어서 매출 1등 했어요. 기획팀에서 보낸 자료 보셨죠?

회장 : 더 해야지! 중남미만 천억을 해야 해. 할 수 있겠니?

나 :?????.......


가끔 나는 *천억의 재산을 가진 회장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지내지 않고 왜 더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지 의문일 때가 있다. 만약 내가 *천억을 이미 벌었다면 나는 더 이상 스트레스받으며 조직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당장 종로에 가서 이미 찜 해둔 5군데의 단독주택과 공터를 현금으로 매입할 것이고, 매일 필라테스를 하고 마사지도 받을 거다. *천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 회장은 거미처럼 팔다리는 얇고 배는 엄청 나왔다. 그러다가 한방에 훅 가면 *천억이 무슨 소용일까? 그런데 회장은 지금보다 사업을 훨씬 더 확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 앞에서 밝혔고, 나에게 내가 맡은 지역의 연매출 천억을 해내겠다는 확답을 듣고 싶어 하고 있다.


나도 상무나 전무 삼촌들처럼 "예! 할 수 있습니다!"라고 YES 맨이 되어야 승승장구할 텐데...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회장과 나 사이에 정적이 2분 정도 흘렀다. 보통 이 정도 되면 상대방이 물러나던데 회장은 달랐다. 나는 회장이 내가 생각했던 사람보다 세다는 것도 살짝 느꼈다. 사채업자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는 호구인 줄 알았는데 돈을 이 정도로 버는 사람은 뭐가 다르긴 다르다는 것을 오늘 느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회장이 원하는 천억의 답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하는 매출의 10배를 더 하길 원하신다면 내 연봉을 지금의 15배만큼 더 올리라는 말을 먼저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쓰던 혀를 나의 이빨과 두 입술이 굳게 막았다.


어렸을 때부터 딱히 장래희망도 없고, 일을 그만두면 할 일도 없어서 그냥 다니는 회사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고 본다. 물론 지금도 내 인생에 있어서 100%의 행복을 누리기는 어렵고, 아직도 찾지 못한 나의 꿈을 지금 와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와 내가 맡고 있는 이 일이 현재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기에, 나를 믿고 스카우트해주신 몇몇 분들을 위해 더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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