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밑창이 구멍 나게 돌아다닌 여행기 day 1
여행 가기 전에 체력을 좀 더 기르기 위해 2주에 1회씩 등산을 다니고, 주 2회씩 PT 받던 것을 주 3회로 늘렸다. 회사 다니면서 미리미리 짐도 싸 놓고, 숙소도 예약했다.
올해의 첫 여행지는 작년에 다 둘러보지 못한 경주였다.
퇴근하고 나서 자기 전까지 너튜브에 있는 경주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검색해서 전부 봤다.
생각 이상으로 유익한 정보가 넘쳐흘렀고, 나는 마치 내일모레 한국사 시험 보는 사람처럼 필기를 하면서 동영상을 봤다. 작년에 갔던 곳이 이런 의미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했고, 이번에 가게 될 곳에 대해서는 예습하는 의미도 있었다. 평소에 나처럼 책 안 읽는 사람들은 너튜브로 신라에 대한 동영상 10개 정도만 보고 가도 얻는 것이 훨씬 많을 듯하다.
경주에 가는 당일에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지하철 첫 차를 타고 강변역으로 이동했다.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이른 시간에도 출근하는 사람들로 도로는 북적였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이 청정한 하늘을 바라보며 서울과 잠시 작별인사를 하는 순간, 한강 다리에 순찰차 7대와 구급차 1대가 서 있는 것을 봤다. 뒤늦게 도착한 순찰차 1대에서 내린 두 명의 경찰은 헐레벌떡 다른 경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또 다른 한 경찰관은 열심히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 한강 다리 곳곳에 한 어머니께서 포스트잇을 붙여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 며칠 뒤에 또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듯했다. 누군가에게는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짧은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나 보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과 저 세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안타깝지만 누군가가 이미 저지른 선택을 돌이킬 수는 없다. 나는 그 일을 수습하게 될 분들의 몸과 마음의 안전을 기원하며 창 밖 멀리 시선을 돌렸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버스 안에서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했다. 잠깐 잠이 든 사이에 어느덧 버스는 경주에 도착했다.
숙소는 지난번과 동일한 호텔이었다.
그때 그 구스 이불의 촉감과 직원들의 서비스를 잊지 못하고 같은 곳으로 예약했다. 체크인 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나는 짐을 맡겨 두고 아점을 먹으러 이동했다.
그때 분명히 재료를 다 확인하고 먹었는데 텐동 안에 굴튀김이 있었나 보다. 굴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그 날 새벽에 생사를 넘나드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그 친구한테 그 날 먹었던 텐동 때문에 죽을뻔했다는 얘기를 절대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후로 텐동은 내 기억 속에서 좋지 않은 음식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경주에서 먹었던 이 텐동은 서울에서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후 월성으로 이동했다.
튀김을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오릉까지 천천히 걸었다.
오릉 근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절이 있는데 방향을 물어보려고 세 명 중에 가장 키 크고 잘생긴 분께 길을 물었다. 그런데 본인들은 대구 경찰이라서 이 곳 지리를 잘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구 경찰이 왜 경주에 있지?'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지만 절 위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근처 슈퍼에서 정확한 절 위치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슈퍼 아저씨는 육사를 졸업하시고 군인으로 퇴직하신 분이셨다. 슈퍼 안에는 온갖 육사 포스터와 시계가 걸려 있었다. 아직까지 육사 졸업반지를 착용하고 계시던 아저씨 덕분에 다른 사찰 위치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오릉 근처에 알영부인이 태어난 우물도 있다.
우물 입구를 너무 막아놔서 안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좀 아쉬웠다.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시던 찻집이었는데 구경해도 좋다고 친절히 맞이해 주셔서 안을 둘러보다가 한 연적을 구입했다. 8각 연적인데 사장님께서 오래전에 구입하시고 감정을 받아보려고 하다가 감정비용이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찻집 전시품으로 뒀다고 한다.
생각보다 불맛이 많이 안 났지만 보기보다 양이 푸짐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있는데 내 옆 테이블에 딸 셋을 키우는 부부가 들어왔다.
'요즘 같이 아이를 낳지 않는 시기에 애국자구나!'라고 생각하며 밥을 먹고 있는데 부부의 일반적이지 않은 대화가 또 내 관심을 끌었다.
아빠 : 밥은 내가 알아서 시킬게!
엄마 :......
아빠 : 저기요! 여기 고등어구이 1인분 하고 돼지 석쇠 1 인분주세요!
식당 주인 : 석쇠는 2인분부터에요
아빠 : 아 그러면 돼지 석쇠 2인분 하고 고등어구이 1인분 주세요
엄마 : 저기...... 공깃밥 하나만 더 시키면 안 돼?
아저씨 계획대로였다면 2인분을 시켜서 5명이서 저녁 식사를 하는 거였다.
다행히 석쇠가 2인 이상부터 주문이 가능해서 3인분을 시키게 됐지만 누군가는 반찬만 더 집어먹거나 눈치를 보며 밥을 먹어야겠지?
나는 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한 가족이 되는 건데 어쩌다가 아빠는 가족이 먹는 밥값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지경이 되었을까? 그럴 거면 자식을 한 명만 낳지 왜 세명이나 낳았을까? 만약 가족이 세 사람이었다면 석쇠 2인분 하고 고등어구이 1인분 시켜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옆 테이블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는 맨밥을 씹지도 못하고 삼켜버렸다.
소고기가 많아서 남기려고 했지만 누군가는 몇 천 원 아낀다고 돼지 석쇠를 먹고 있으니 그냥 일어설 수가 없었다. 배불러도 그날만큼은 싹싹 다 집어서 먹고 일어났다. 부부나 딸 셋의 옷 차림새를 보면 못 사는 형편도 아닌 것 같은데 마음이 아팠다. 내가 그 와이프라면 그런 남편하고 같이 밥 먹기 싫을 것 같다. 물론 내가 그 가정사를 전부 아는 것은 아니니 그 날만 남편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을 골랐을 수도 있겠지?
저녁값을 지불하고 호텔로 돌아가면서 앞으로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그들이 먹고 싶은 것을 먼저 물어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경주에서의 하루는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