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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pr 06. 2021

경주에도 남산이 있다

종교는 없지만 부처님 보러 남산에 갔다 day 2

경주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내가 묵은 호텔이 위치해 있다.

창문을 열면 '버스 뷰'가 눈 앞에 펼쳐지고 방 안에는 중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소음이 없다. 그리고 매일 침대 시트를 갈아 주기 때문에 보송보송한 기분으로 잠을 푹 잘 수 있다. 아침엔 한식이 준비가 되어 있어서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에 젓갈을 살짝 올려서 북엇국과 먹으면 저녁 먹기 전까지는 든든하게 하루를 버틸 수 있다.


아침에 밥과 과일을 배불리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여행을 하면서 아침을 든든히 먹을 수 있는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경주에서의 둘째 날, 호텔 앞 버스정류장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통일전으로 향했다.

11번 버스를 한 번 놓치니 40분 뒤에야 그다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일찍이 서둘렀던 일정이 40분이나 지체되었지만 근처 M 햄버거 가게에서 싸움이 났는지 순찰차가 출동해서 본의 아니게 싸움 구경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황금의 도시 경주에도 이른 아침부터 기운 넘치게 주차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9시 40분에 11번 버스를 타고 통일전에서 내렸다.

여름에는 연꽃이 활짝 핀다는 서출지를 보러 왔는데 봄이라 그런지 연못 바닥이 다 말라 있었다.



서출지는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저수지인데 한 노인이 소지왕에게 건낸 책을 보고 위험을 피했다고 하여 못 이름을 서출지라 하게 되었다. 옆 사찰에서 이번 여행도 별탈 없기를 빌었다



서출지 옆에는 절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갔다. 고요한 동네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는 유채꽃이 매우 예뻤다


서출지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이 있다.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이다. 하필 내가 간 날이 공사중이라 자세히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경주 남산동 동, 서 삼층석탑은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서로 다른 형식의 두 탑이 쌍탑을 이룬 독특한 형식이다. 동탑은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이고 서탑은 일반적인 신라석탑 형식이다. 자세히 보면 동탑은 벽돌탑처럼 아래 위쪽 모두 계단식으로 처리했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놓기 위한 받침돌인 노반만 남아 있다.


반면 서탑은 2층으로 된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렸고 위층 받침돌 4면에 2구씩 8종의 신을 새겼다. 공사 중이라 가까이에서 살펴보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서출지 근처에서 해물순두부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두부를 직접 만드는 곳이라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절대 맛볼 수 없는 담백하고 건강한 맛이었다.


서출지에는 이요당이라는 정자가 있다. 연못이 말라 있어서 내려가서 보고 왔다. 신라 사람들이 흘린 것 없나 찾아봤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남산 둘레길을 따라 본격적으로 그 날의 하이라이트 일정을 시작했다.

서출지에서 시작해서 남산 둘레길을 따라 몇 개의 능과 부처님 몇 분을 뵙고 호텔로 돌아오는 것이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정이었는지는 곧 깨닫게 됐다.


제일 먼저 마주한 능이 정강왕릉과 헌강왕릉이다.

헌강왕릉은 무덤 보호석이 4단으로 적재된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삼국 통일 이후 신라 왕릉으로서는 4단 적재 양식이 유래가 없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왼쪽의 능이 정강왕릉, 오른쪽 4단의 둘레돌이 있는 능이 헌강왕릉이다. 두 능 모두 발굴조사 중이었다


남산 둘레길을 따라 숲길을 지나 어느 마을도 가로질러서 한 2시간을 걸었을까? 드디어 다음 목적지인 '보리사'가 나왔다. '보리사'를 보기 전에 '마애석불' 이정표가 보였다. 나는 겁도 없이 산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걷다 보니 발가락이 너무 아팠다.

왼쪽 운동화를 벗어 보니 엄지발가락에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오른쪽과 왼쪽을 서로 바꿔 신으면 구멍 난 부분이 신경 덜 쓰일 것 같아서 산 중턱의 바위에 앉아서 양말을 바꿔 신었다. 하지만 급경사의 산행을 워킹화를 신고 오르니 자꾸 미끄러지고 짧게 자른 손톱 밑에도 흙이 들어갔다. 이제는 바꿔 신은 오른쪽 발가락마저 아프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고 봤더니 엄지발가락이 만들어둔 큰 구멍이 둘째와 셋째 발가락 두 개를 한꺼번에 옭아매고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마애석불님이 나올지 정확한 이정표도 없는데 중간중간 희미하게 한자가 새겨진 바위가 눈에 보였다. 이 곳 자체가 엄청난 유적지라는 큰 기대와 인내심을 가지고 마애석불을 찾아 기어올라갔다.


힘들게 30분 이상을 기어올라온것 치고 마애석불님이 너무 초라했다. 혹시 뒤에 뭐가 더 있나 싶어서 올라갔다가 오히려 내려오는데 무진장 애를 먹었다


한번 삐끗하면 산 밑으로 3초면 굴러내려올 것 같은 급경사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데 그 시간에 유독 회사에서 징글징글하게 전화가 끊임없이 왔다. 그중 한 전화가 끊기질 않고 울려댔으니 예상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제3 공장에 근무하는 황 부장님이었다. 이 분은 나와 같이 근무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전화듣기평가 난이도 상으로 손꼽히는 분이다.


황 부장님 : 어~ 소과장, 출장 나왔나베! 밖인거 같은데...

Sorita : 네, 부장님. 저 오늘 휴가예요

황 부장님 : 어데 또 좋은데 놀러나왔는교?

Sorita : 부장님 계신 곳 하고 멀지 않아요

황 부장님 : 어데 왔는교? 부산 놀러 왔는가?

Sorita : 아니요. 경주 왔어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황 부장님 : 경주는 여서 멀어. 차 타고 1시간 30분~2시간 걸려. 아니 별일은 아니고...... 그냥 전화해봤어. 지난주에 알려준 **랑 혹시 변동사항 있나 싶어서. 휴가니께 월요일에 통화해야겠네예~ 

Sorita : 네, 부장님. 제가 월요일에 먼저 전화드릴게요


'전화하면서 내려가다가 굴러 떨어지면 나의 마지막 통화는 황 부장님으로 찍혀 있겠지?' 이런 끔찍한 생각이 문득 들자 나는 하산을 멈추고 마애석불님 앞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서 통화를 했다. 통일신라시대에 마애석불을 조각한 사람들은 아주아주 먼 미래에 한 여자가 이 곳까지 기어올라와서 핸드폰이라는 것을 들고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할 거라는 것을 상상도 못 했을 거다.


마애석불이 있는 산에서 내려오면 바로 옆에 '보리사'라는 비구니 절이 있다.

화장실이 급해서 절 앞에 위치한 공중화장실에 갔는데 불도 안 들어오는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첩첩산중에서 핸드폰으로 통화도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푸세식 화장실이라니 나는 식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산속에서 볼일을 봤어야 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푸세식 변기를 내려다보니 밑이 까마득했고 지옥으로 가는 문이 이곳이구나 싶었다.


화장실 불도 안 들어오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산행을 하느라 다리까지 풀렸기 때문에 자칫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나 이외에는 찾아온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화장실 문이라는 문은 전부 열어서 최대한 푸세식 화장실을 훤히 밝혔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호주머니에서 떨어질만한 핸드폰이나 립밤 같은 것은 전부 풀숲 위에 두고 볼일을 마쳤다. 비구니 절이니 남자 스님은 없을 것이고, 혹시라도 스님과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한다 해도 그다음 날이면 나는 서울로 올라올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같은 때 화장실에 비누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든데 이곳에는 손 씻을 세면대나 걸레 빠는 수도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리사에는 꼭 봐야 할 유명한 부처님이 계신다.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이다. 광배에는 작은 불상과 불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좌상이 선각되어 있고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다


보리사에서 모든 기운을 다 소진한 후 1시간 정도 남산 둘레길을 따라 다시 이동하니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이 나왔다. '군'이라는 단어를 통해 예상할 수 있듯이 이곳은 바위 면과 주변에 새겨져 있는 여러 조각상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남쪽에 큰 삼층 석탑도 있어서 '탑곡'이라 불린다. 지금까지 총 34점의 도상이 확인되었는데 이렇게 여러 상이 한자리에 새겨진 예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구층목탑과 칠층목탑 사이에는 연꽃 위에 앉아 있는 석가여래가 함께 새겨져 있다. 단단한 바위 위에 불상을 조각해 둔 솜씨가 대단했다


피로감에 종아리가 퉁퉁 부었지만 다큐멘터리로 보던 곳을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 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부서진 기와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다음 코스는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을 보러 이동했다.

이 석상은 경주 남산의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 면을 작은 굴 모양으로 파내고 그 안에 새긴 불상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암이 많아서 암벽을 파고 들어가 이런 석굴 사원을 만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원래 둘레길을 더 둘러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저녁 5시를 훌쩍 넘었기 때문에 슬슬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가 자주 운행하지 않아서 기다리는 시간에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나는 무모하게 호텔 방향을 찾아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무심코 지나칠 뻔했던 것들을 몇 가지 더 발견했다.


통일신라시대 교량 구조와 축조 기술을 알 수 있는 춘양교다. 다리 양 끝을 받치는 교대, 날개벽 그리고 배 모양의 교각 3개로 이루어져있다. 오른쪽은 10m 깊이의 월성 우물이다


경주에는 현재 신라시대 우물 60여 개가 남아 있는데 그중의 하나인 이 우물이 월성 내에서는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다. 깊이가 10m인데 안을 훤히 볼 수 있어서 내려다보니 중학교 때 봤던 영화 '링'에서 사다코가 우물 속에서 기어올라올 것 같은 공포감도 들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비빔물냉면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8천원에 먹은 비빔물냉면이다. 냉면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건 참 맛있었다. 이 날 33,944보를 걸었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발이 불편해서 신발을 살펴보니 밑창이 구멍나 있었다. 조만간 등산화도 꼭 장만해야겠다


호텔에 들어와서 30분간 족욕을 하고 푹 잤다. 이렇게 경주에서의 알찬 하루가 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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