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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pr 10. 2021

교토와 경주 둘 중에 어디를 한번 더 갈까 고민이라면

쓰다보니 경주홍보대사 느낌이 나네

지금까지 일본에 딱 세 번 가봤다.

세 번 다 교토만 갔다. 오사카에 내리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교토행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물었다.


교토는 어떤 곳이야?


그러면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교토는 한국의 경주 같은 곳이야


그동안 내가 사람들에게 이런 대답을 할 만한 자격이 있었을까?

교토를 세 번이나 방문했지만 정작 경주는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한 번 그리고 엄마 손에 이끌려서 역사체험으로 한 번 갔었다. 만약 코로나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는 경주에 가는 대신 해외의 어딘가로 눈을 돌렸을 것이다. 집에서 교토에 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경주를 방문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4시간 정도로 비슷하니 이왕이면 면세품 쇼핑도 하면서 고속버스보다는 비행기 타는 게 더 재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경주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경주를 모를 수 있을까? 경주에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우리 민족의 보물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쯤 경주에 가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말 경주를 속속들이 알고 있을까?


경주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남산으로 바로 이동하기 전에 시외버스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500번 버스를 타고 '나정'으로 이동했다. '나정'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한국인이라면 어렸을 적 전래동화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본 곳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옛날 진한 땅에 여섯 촌이 있었는데 그중 한 촌장이 우물가에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우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그 자리에 가 보았더니 말은 간 곳이 없고 단지 큰 알만 있었다.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와 길렀는데 그 아이가 박혁거세다. 박혁거세가 13세가 되던 해 6부 촌장이 그를 임금으로 받들었으며,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하였다.



나정은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든 우물이다. '이게 다야?'라는 허무함이 몰려올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자


'나정'에서 '포석정'까지 버스로 한 정거장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경주는 서울처럼 버스가 10분에 한 대씩 오는 곳이 아니니 버스비도 아낄 겸 천천히 걸어갔다. 30분 정도 걸으니 '포석' 이름이 있는 여러 카페와 식당이 보였고 어렸을 적에 부모님과 같이 갔던 포석정에 도착했다.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별궁으로 현재 정자 등의 건물은 전부 없어지고 화강석으로 만든 수로만 남아있다. 역대 임금들이 이곳에서 수로에 잔을 띄우며 시를 읊고 노닐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헌강왕이 남산의 신이 추는 춤을 따라 추면서 신라 춤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당시 유일하게 헌강왕만 신을 볼 수 있었다고 하던데 그럼 헌강왕이 무당처럼 귀신을 볼 수 있었다는 건가? 어쨌든 전해 내려오는 얘기니 흥미롭게 듣고 넘겼다.


또한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끊은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록으로는 포석정은 귀족들이 먹고 마시는 연회 장소였다고 하지만 이 기록은 고려의 입장에서 서술이 되었기 때문에 100% 진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국가적인 제의를 행하던 신성한 곳이라는 견해가 있고, 실제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던 돌이 수로 근처에 아직도 남아 있다.



수로에 잔을 띄우면 몇몇 장소에 잔이 회오리처럼 멤도며 한 자리에 멈췄다고 한다. 그때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고 한다


물이 흘러들어오는 곳에 원래 거북이 모양의 돌이 지붕처럼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포석정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나무를 베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나무를 보존하자는 의견이 더 우세한 덕분에 나무와 포석정은 여전히 역사와 함께 우리 곁에 있다.


아직 조사 및 수습 중인 석재유구들이다. 내가 만약 고고학자라면 경주의 역사는 너무 방대해서 쉽사리 손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포석정에서 나와서 다시 남산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잠깐 절에 들렀다.


절 앞에 오래된 탑이 눈에 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뎠는지 갈라진 틈이 많았는데도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다


이 절 근처에 망월사가 있다.

망월사의 경내에는 대명전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이곳에 선덕여왕의 위패와 초상이 모셔져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꽤 인기를 끈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작 이 곳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듯했다.



대명전 안에 선덕여왕의 초상과 함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선덕여왕에 고현정이 나온 것만 알고 드라마는 한 번도 안 봤네
대명전 앞 작은 연못 안에 앙증맞게 세워진 삼층석탑과 9~10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탑부재가 놓여 있었다


망월사를 지나 남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니 등골이 오싹해질 만한 공동묘지도 지나야 했다.

오래된 묘지 몇 개는 길을 낸다고 반쪽자리 모양인 것들도 있었다. 혹시라도 사진에 귀신 찍힐까 봐 공동묘지 사진은 한 장도 찍지 않았다.


공동묘지 사잇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삼릉이 나온다.



삼릉은 세 명의 박씨 왕들의 무덤이다. 아달라왕, 신덕왕 그리고 경명왕의 능인데 가운데 신덕왕릉은 도굴을 당했다. 신덕왕릉은 굴식돌방무덤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삼릉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경애왕릉도 있다.



후백제의 견훤에게 사로잡혀 포석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경애왕의 무덤이다.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둘레돌로 보이는 석재가 일부 보인다


경애왕릉을 끝으로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2박 3일간의 짧은 경주 여행이었지만 가기 전에 너튜브로 해설을 듣고 간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왔다.

 

여행은 계획이 틀어졌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시간 관계상 계획했던 것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색다른 경주의 골목길도 탐험했다


 삼국유사는 경주를 가리켜 절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탑은 기러기가 줄지어 서 있는 곳이라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주 남산이 있다. 신라의 왕과 귀족들이 불국사를 찾을 때 백성들은 이곳 남산으로 향했다. 만약 경주에 가서 불국사만 보고 온 기억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경주 남산에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경주 남산이야말로 신라 역사의 산증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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