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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ug 03. 2021

표적

7권 / 10권 데미안

데미안을 처음 읽은 것은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지금처럼 무더웠던 어느 여름이었다.


그 책을 읽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개학하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내가 가지고 있는 책 보다 더 두꺼운 '데미안'을 빌렸다. 페이지 수가 많으면 내용에 대한 부연적인 설명이 더 많아서 이해하기 쉬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자 수가 많아도 내용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책 한 권을 들고 집과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그 무게는 내 어깨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데미안을 다 읽는 며칠 동안 나는 책과 교과서 그리고 노트까지 들어있던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다녔다.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은 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내려서 관사까지 30분은 더 걸어야 했다. 지금은 관사 주변에 아파트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섰지만 아직까지도 관사로 향하는 그 길은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다.


내 인내심은 그때부터 길러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집을 향해 걷다 보면 교복 치마는 땀에 절어서 두 허벅지에 휘감겼고, 어디서 흘러내린지도 모르는 땀방울이 종아리를 타고 내려와 발목 양말까지 적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시간대에 지나가던 1톤 트럭 아저씨가 차를 세우고 나를 집까지 태워다 줄 테니 타라는 제안을 했다. 어렸을 적부터 '모르는 사람이 태워준다고 하면 싫다고 해라'라고 철저히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한두 번은 앞뒤 생각도 안 하고 거절했다. 그런데, 하굣길에 아저씨는 자주 등장했고, 매번 집까지 태워주겠다며 사양하지 말고 타라고 했다. 항상 미소를 지으며 호탕한 목소리로 말을 걸던 그 아저씨의 얼굴이 어느덧 낯이 익었고, 엄마가 날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관사까지의 거리도 멀지 않아서 '잠깐인데 딱 한 번만 얻어 탈까?'라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매번 어려웠다.


만약 그때 내가 그 트럭을 탔다면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까?

인간의 속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다. 트럭 아저씨의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표적'을 달고 다니지 않았으니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나 그때보다는 판단력이 조금은 더 분명해진 지금은 그 아저씨의 호의가 내 기억 속에 썩 기분 좋게 남아 있지는 않다.


누구나 살면서 결정을 한다.

그런데 순간의 결정이 본인의 인생을 바꾸고, 개인이 속한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릴 수도 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경계하라는 교육을 받는다. 누가 준 거 함부로 먹지 말고,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그리고 친구도 가려서 사귀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알고 있는 것도 가끔은 '그때, 그 시간에 내가 왜 그랬지?'라는 의문을 스스로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관사에서 살다가 성인이 되어 서울의 한 원룸을 거쳐 지금 여기에서 살게 되기까지 나는 별다른 큰 사건 사고 없이 무탈하게 살아왔다. 큰 사고가 있을 뻔한 적은 열 손가락을 다 합하고도 다른 사람의 손가락 몇 개를 더 빌려와야 하지만 그래도 현재는 그때 그 일을 추억담이나 브런치 소재로 쓸 정도의 해프닝으로 남게 됐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다음 생애가 있다면, 가까운 사람의 눈을 보고 너를 질시하거나 위해가 될 사람들을 가리도록 해. 그렇지 못한 대가가 너무 가혹하구나...... <아버지 블로그 내용 중에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중에서도 최전방에 위치한 그 기관에서 처리하는 큰 사건마다 결론이 지저분하다. 그 기관만 뚝 떼놓고 보면 이곳이 멕시코나 콜롬비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헷갈린다.


사건과 사고는 우리가 운 좋게 지금까지 피해 간 것이지 언제라도 개인에게 충분히 닥칠 수 있는 일이다. 평범하게 회사나 학교를 다니며 일상생활을 하던 사람들도 언제 어디에서 살해당할지 모르고, 나의 부재로 인해 내 가족의 삶이 몰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건 초반에 미적대지 않고 제대로 수사를 해서 '정의'를 지켰다면 희생자 가족뿐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은 100일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 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까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코시국에 비대면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무엇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고, 미래에 대한 의지 역시 다짐하고 있다.


If you don't overcome the issues we face, then these problems just continue on although it's not easy to overcome our current issues. <봉준호 감독 기생충 인터뷰 중>


공권력이 내놓은 결과에 대해서 방구석에 계신 많은 님들은 도무지 조용히 입 다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불안하다. 해결 능력이 3 정도밖에 안 되는 그 기관에 10이라는 권력을 너무 섣불리 부여한 것이 아닐까? 그 능력을 부여하자마자 4개월이 지나서 한 대학생의 가족이 피해를 입은 것만 같다.


때로는 두려움도 느낀다.

지금까지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가장 객관적인 자료라고 믿으며 무비판적으로 개, 돼지처럼 사육당해왔던 나 자신에 대해 환멸도 느낀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이미 투쟁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아마 곧 있을 거다. 물론, 그렇다고 그 기관의 시스템이나 사건 해결에 대한 문제의식이 바로 개선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헛일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횟수는 줄어들 것이고, 공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자들 역시 예전보다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담아본다.


그것도 다만 시작에 불과해.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거지. 새로운 것은 낡은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일일 거야.

너는 어떻게 하겠어?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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