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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ug 14. 2021

귀신의 집 上

딜쿠샤 이야기

서울 종로구에는 나만 알고 있는 귀신의 집이 있었다.

물론 그곳에서 내가 귀신을 본 건 아니다.

만약 내가 귀신을 본다면 회사 생활을 접고, 신을 모시는 자영업의 길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귀신을 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너무 음침하고 사연도 많으며 현실 세계와 단절된 곳이라는 것을 한눈에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이곳을 처음 발견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N 년 전, 토요일 영어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그날 저녁을 종로의 아직 가보지 않은 골목길을 구경하려고 무작정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였다. 그때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소비야였고, 그들은 '서울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문구가 생각날 정도의 다양한 곳을 나와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좋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종로에 달동네나 옥탑방 같은 곳이 많아서 돌아다니다 보면 신기하고 재밌는 볼거리들이 많았다. 심지어 아직도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를 하시는 주민들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종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정반대편에는 내가 방송에서나 보던 1970~80년대의 삶이 아직까지 종로구의 어딘가에 잔존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토요일 일과로 색다른 종로의 모습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멀리서 아주 큰 저택을 발견했다.

딱 봐도 서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고, 과거의 모습이 거의 보존이 된 곳이었다. 그때 나는 이 건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에 검색을 해 봤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1주일 후 날이 좀 더 밝을 때 이곳에 오니 여기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에 30가구가 모여서 산다고 들었다. 1층 창문 너머로 뜯지 않은 두루마리 휴지가 보였고 텔레비전 소리도 들렸다. 중간에 위치한 현관문으로 들어가면 내부가 오른쪽과 같다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여기 거주하시는 분들이 왜 허락도 없이 들어왔냐고 호통을 칠까 봐 무서웠고, 그때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불법 체류한다는 사실도 몰랐기 때문이다.


건물에 방이 매우 많았다. 왼쪽에도 누군가 살고 있었고, 정면에 있는 곳은 막혀 있었다.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에 화장실이 있었다


이 집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나는 '서울'과 관련이 있는 박물관은 전부 다녔다.

그러던 중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딜쿠샤'라는 이름이 적힌 낯익은 사진 한 장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이 건물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1923년 미국인 부부가 건축한 이 건물의 이름은 딜쿠샤로 페르시아어 '기쁜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1919년 AP통신사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고종의 국장과 3.1 운동 그리고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여 전 세계에 알렸다. 딜쿠샤는 1942년 테일러 부부가 떠난 후 소유주가 바뀌고, 공동주택으로 사용되면서 본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다.


딜쿠샤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사진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건물 안쪽은 굉장히 어두웠고, 엄청난 선입견일수도 있지만 이런 곳에서 지내는 분들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친구들 손을 잡고 이 건물까지 같이 구경 와도 그 누구도 나와 함께 딜쿠샤 내부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밖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서 서울로 놀러 왔다.

서울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오빠는 토요일 오후 1시에 영어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학원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빠한테 신기한 건물을 보여주겠다며 딜쿠샤로 안내했고, 오빠도 건물의 외관을 보고 놀라워했다.


오빠 : Sorita야. 오빠 잘 알지? 오빤 이런데 들어가는 거 안 좋아해

Sorita : 안이 궁금하지 않아? 지금은 볼 수 없는 건축양식이 있을 거 같아!!!

오빠 : 안에 시체 있고 쥐 나올 거 같잖아. 내가 여기 서 있을 테니까 천천히 보고 내려와. 기다리고 있을게


결국 혼자 건물 안에 들어가게 됐지만 그래도 오빠가 현관 앞에 서 있으니 안에 들어가는 게 예전만큼 무섭지가 않았다. 그런데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입구에 있던 계단을 발로 밟자 삐걱거리는 오래된 나무 소리가 조용한 공간 안에 울려 퍼졌고, 1층과 2층 사이에 공용화장실도 있었다. 화장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는 그 복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영어학원 마치고 방문했던 그때 그 시간이 고작 오후 3시였는데 이곳만은 한밤중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그런 곳인가?', '이런 데서 누가 살지?'라는 의문을 가지며 핸드폰을 켰지만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너무 어두워서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고, 한 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어둠에 눈이 적응되고 2층으로 올라오자 긴 복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복도에는 5개 정도의 방이 더 있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복도 처음부터 끝까지 발끝으로 조심히 걸으며 사방을 둘러봤지만 나무 바닥이 끽끽거리는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 누군가 문 열고 나온다면 3단 고음으로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분위기에 더운 여름이지만 소름이 돋는 기분 나쁜 그런 곳이었다.

나는 오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관으로 오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다가 화장실 문 앞에 붙여진 '쥐가 들어오지 않게 문을 꼭 닫으시오!'라고 손으로 삐뚤삐뚤 적힌 종이를 읽자마자 혼비백산이 되어 뛰어내려왔다.


딜큐샤의 뒤로는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서 2층의 외벽을 볼 수 있다. 유리창이 얇디얇고 지붕의 형태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 후로도 딜쿠샤를 몇 번이나 더 방문했다.

가끔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나와서 현관 앞에 놓인 부서진 의자에 앉아 있기도 했고, 시동이 꺼진 빈 순찰차가 딜쿠샤 앞에 주차되어 있기도 했다. 이곳에 무슨 사건이 발생한 건가 싶기도 했지만 건물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또다시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도 순찰차가 있었다.

'만약 경찰이 이 안에 있는 거라면 좀 더 안심하고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구경해볼까?'라는 고민을 잠깐 했지만 건물 안의 그 특이한 냄새와 곤지암 정신병원에서나 느껴볼 음침함에 몸서리를 치며 돌아 나왔다.


그 후로 1년 정도 지났을까.

서울에서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귀신의 집에 '딱지'와 '경고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것을 봤다.

'*조에 의거하여 빨리 이 건물에서 나가라', '담배꽁초로 화재를 내면 처벌받을 수 있다', '이 건물과 건물 부지는 국가 소유다', 'CCTV 작동 중' 등등 주거민들에게는 부정적인 문장들이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문명이 새끼손가락 하나를 잠깐 딜쿠샤에 담그고 간 듯한 흔적을 보고 나니, 이 건물에서 과거 그때만큼의 음침함을 더 이상 느낄 수는 없었다.


예전에는 30가구가 이 건물 안에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경고문 때문인지 몇몇 가구만 아직 남아 있는 듯 보였다. '여기서 나가면 이 사람들은 어디서 살지?', '모아둔 돈은 있는 걸까?', '만약 끝까지 여기서 못 나간다고 버티면 끌어내는 건가?" 등등 걱정과 궁금함이 많았지만 나 역시도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 이렇게 방치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게다가 딜쿠샤의 지하에는 한 노숙인이 살고 있었는데 돌아가신 지 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발견이 됐다. 지하실 문을 여니 쓰레기는 분리수거해서 버리는 게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광경이 펼쳐졌다. 갑자기 종로 거리가 깨끗해졌다 싶었는데 온갖 잡쓰레기는 이 사람이 수거해갔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폐물이 쌓여있었던 것이었다. 공무원 몇 분과 특수 청소하시는 분들이 소독을 하고 내부를 정리하시는 걸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는 본인 소유의 집에서 정리 정돈 잘하며 사람들과 즐겁게 사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그 후 마지막으로 찾은 딜쿠샤는 큰 천에 덮여 있었고 공사 후 개방을 하겠다는 표지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딜쿠샤 공사가 완료되고 난 후 나는 사전 예약을 통해 이곳에 '당당하게'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톡] [오전 11:23]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현황을 알려드립니다.
[공공서비스 예약 정보]
- 이름 : Sorita
- 예약번호 : R21080***************
- 공공서비스 : 딜쿠샤 전시 관람 사전예약(8월)
- 장소 : 딜쿠샤
- 이용일시 : 2021.08.1*~2021.08.1* 13:30~14:30
- 예약현황 : 예약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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