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간방 박씨 Feb 20. 2022

코시국에 떠나는 출장 준비 편

당분간 한국에 없어요

62세 염석진. 현재 대한민국 경찰입니다. 

역사적으로나 민족정기를 생각할 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투서 한 장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잘못된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독립운동 외에는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암살>


왜 그랬냐고 묻는 말에 그는 모든 것이 조직을 위한 일이었다고 무릎 꿇고 대답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던 그는 몇 주 뒤 그의 사무실을 방문한 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본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36년 간의 일제 치하 기간 동안 누가 누구를 친일파라 욕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박물관에 갈 때마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상상 속의 내가 어떤 선택을 했던지간에 먹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 사람들이 이해도 된다. 


모월 모일 몇 시에 나는 출국을 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출입국의 상황 속에서 나는 드디어 떠난다.


작년 말에 계획했던 것보다 출장 일정을 한 달이나 미뤘다.

나는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모든 정보를 수집했고, 현지에 있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와 거의 매일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을 공유했다.


나는 그를 1*년 전 본사에서 처음 만났다.

덩치가 크고 뾰족뾰족한 머리 스타일을 한 외국 남자를 회사에서 반겨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금요일에 일을 마치고 나는 그와 회사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우리 회사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기 때문에 돈도 사람도 없었다.


그런 그의 일을 내가 도왔다.

그의 사업을 위해 자잘한 일들을 하고 주문을 받다 보니 나의 역량이 너무나도 모자람을 느꼈다. 그때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스페인어 알파벳을 외우고 단어를 익혔다. 슬럼프가 심하게 왔었던 나의 회사 생활에서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하는 게 작은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이 회사에서 진짜 못 버티겠다고 마음먹었을 당시 갑자기 나에게 큰 보상이 주어졌다.

그동안 그 친구와 영업이익을 잘 냈으니 그 지역들을 한 번씩 둘러보고 오라는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그때는 그 지역의 공항 문 밖을 나서면 서부 영화에서나 보는 것처럼 지천에 선인장이 깔려 있고, 여기저기서 총알이 날아다니는 줄 알았다. 또래 친구들보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이 부족했던 나는 만약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평생 지구 반대편은 갈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또 몇 개월을 버텼다.


처음으로 여행자 보험이라는 것도 가입을 하고 미국을 경유하여 도착했던 내 친구의 사무실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창고도 없어서 제품이 길가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사무실은 좁고 어두웠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열심히 했고, 지금은 3개의 큰 창고를 가지고 본인의 이름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에는 매년 여름에 고객들을 모시고 한국에 와서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각자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그들의 첫 번째 타깃이 됐다.

나쁜 짓을 하고 장난질 치기 딱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 친구와 연락을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 친구와 일을 못하게 됐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딱 한 사람이 더 있다.

그분의 배후를 우리는 전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찝찝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심지어는 빨리 쳐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김구 선생님은 한 사람과 함께 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일단 믿고 쓰라고 하셨지만, 그래서 정작 본인은 총 맞아 죽지 않았던가?


나 스스로에게 고민이 많았지만 이건 나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내릴 결정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 조직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이득이 될지를 꼼꼼하게 따져봤다. 그리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절대 성급하게 일을 저지르지 않고 지금처럼 차근차근 하나씩 진행해 보려고 한다. 


안옥윤 : 왜 동지를 팔았나

염석진 :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안옥윤 : 16년 전이고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영화 암살>
매거진의 이전글 수상한 도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