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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pr 09. 2022

독버섯은 어디에나 있다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바꿔볼 생각을 해 본 적은 전혀 없다.

나 하나의 움직임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는 그냥 내 몸과 마음만 편하면 장땡인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의 한 사건을 겪으며 나의 가치관은 아주 조금 변했다.

사실 내가 속한 조직과 내가 엮이게 된 한 사건은 나의 작은 머리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일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사건 앞에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일 뿐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성향인지,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다 해봤을 MBTI 검사를 굳이 하지 않아도 (아직도 나는 MBTI를 해본 적이 없다) 한 사건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분명히 정의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회를 보게 됐다.

나쁜 짓을 저지르면 응당 그에 맞는 벌을 받고, 감옥에 갈 줄 알았지만, 오랜 세월 돈놀음을 했던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처벌을 받지 않게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자신하고 있었다. 어쩜 그렇게 처음엔 본인이 미쳤었다고, 전부 잘못했다고 모두가 있었던 회의실 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릴 수 있었는지도 놀라울 따름이다. 정작 그들은 언제 어디서라도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어느덧 지금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나에게 있었다. 그들은 독버섯이었다. 내가 심은 나무에 어느덧 독버섯 하나가 자라서 장갑을 끼고 꺾어버렸는데, 자고 일어나면 또 자라고, 새끼도 퍼뜨리던 그런 독버섯이었던 것이다. 한 때는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지위에 있어서 언제라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시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심지어는 그의 지인이었던 임원은 내가 있는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로 출장을 가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고 숨어 살 줄 알았는데 그들과 비슷한 친구들이 사회 곳곳에 지배 세력으로 퍼져 있었고, 여러 회사에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대가 한번 바뀌면 조금은 더 나아지려나?

과거 리베이트를 당연시하던 업계에서 한몫들을 챙겨 왔던 사람들이니 지금과 같은 사회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못마땅할 수도 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이 사람들도 현직에서 물러날 테니 조금은 바뀐 사회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나는 나 스스로의 작은 바람을 가지고 지내고 있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사업부 조직을 이끌어서 지난 1분기 동안 정말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이렇게 우리는 자화자찬을 하며 남은 올해도 이 기세를 몰아 마무리를 잘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1분기를 마감하고 4월 달 매출정리를 하던 중 이상한 점을 회계팀 팀장과 발견했다.

나는 과거 나와 함께 1*년간 일하고 있었던 거래처들과 함께 일을 하는 한편 또 다른 사업부의 수출일도 하고 있다. 업무가 과중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적당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내가 전부 관리하고 있다. 그 사업부의 업무는 내가 아직 완벽하게 파악을 못했기 때문에 N상무가 지시하는 대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1분기를 마감하고 퇴근을 30분 앞둔 시간에 회계팀 팀장으로부터 그 사업부 매출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유인즉슨 작년 단가 대비 올해 내가 마감한 그 사업부의 단가가 무려 400% 이상 뻥튀기기 되어 있었다는 거다. 황당해서 나는 즉시 그 사업부에 근무하는 J대리에게 연락했다.


Sorita : J대리, 3월 10일 자 매출된 거 단가 좀 확인해 봐야겠는데?

J대리 : ***업체로부터 PO는 받으셨지요?

Sorita : 어. PO 받은 대로 매출 잡아서 부가세 신고까지 했는데 단가가 작년하고 너무 차이가 나네. 계약서 있어? 계약서 좀 보자


계약서를 보니 단가는 정말 400% 이상 뻥튀기가 되어 있어서 실제 매출액과 몇 억 이상 차이가 났다.


순간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지난 6개월 간 정말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돈을 1*년 간 빼돌렸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일도 그 사례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제발, 이 사회는 바꿀 수 없을지언정 내가 속한 부서만큼은 내가 두 눈을 뜨고 지켜야겠다는 생각 하나는 가지고 살고 있었다.


N상무와 한국에 있는 ***업체 그리고 필리핀에 있는 외국회사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던 N상무와 ***회사 사장과의 내연관계까지 알게 됐다. 희한하게 나의 상식으로는 이런 관계를 숨기는 게 당연한 거 같은데 N상무는 우리 막내에게 내연 관계를 자랑하고 다녔나 보다.


이미 퇴근 시간은 훌쩍 넘어서 나는 내 숙소로 돌아와서 N상무와 연락을 했다.

그는 이미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업체에 연락해서 다음 날 바로 매출을 수정할 수 있게 조치를 취했다. 이미 마감한 자료를 윗선에 전부 보고를 했기 때문에 나는 뻥튀기한 몇 억이 빠진 금액이라도 다시 말씀을 드리려고 했으나, N상무는 나에게 어차피 곧 알게 되실 일이니 지금 바로 이야기하지 말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지금까지의 더러운 관행이 어떠했는지 나는 앞으로도 이해할 생각이 없다.

다만 불과 몇 개월 전과 같은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으니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부서만큼은 내가 지키겠다는 다짐을 다시 했다. 독버섯은 정말 어디에나 있다. 보기엔 좋은 옷을 입고 언변도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조직에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회사에서 여성인 내가 앞으로 어디까지 올라가서 어떤 일까지 하게 될지는 궁금하지 않다. 작년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앞으로 나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 미래를 볼 줄 아는 초능력이 있었다면 나는 나의 삼촌뻘들과 그렇게 겁 없이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성과를 많이 내서 돈을 남들보다 더 벌고 싶다.

15시간이 넘는 비행은 비즈니스를 타고 싶은 소망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꿈은 나를 믿고 나와 함께 지금의 회사로 와 준 모든 거래처에게 신용을 잃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나로 남고 싶다. 앞으로 최고가 될 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훗날 되돌아봤을 때 후회가 적은 내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더 이상 나의 윗세대 독버섯들이 나의 영역에 퍼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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