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떠난 후 마산에 대한 기억은 거의 사라졌다
뉴스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모텔에는 온갖 범죄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런 곳을 듬직한 남자랑 가는 것이 아니라서, 모텔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나는 매번 찝찝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산에서 꽤 괜찮은 모텔방을 잡았다.
8층에서 창문을 열면 롯데백화점 뷰가 보인다.
오늘은 월급날이니 고생한 나를 위해 뭐라도 사고 싶었다. 오후 6시가 넘었기 때문에 마감 세일하는 게 있으면 반찬이라도 사 오려고 기대를 하고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다.
근처 마산 어시장에 들러서 저녁으로 횟감을 산 다음에 모텔로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다.
6만 원 이상 숙박 시 3만 원 할인쿠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9만 원짜리 방을 예약한 후 3만 원 쿠폰을 써서 6만 원만 결제했다. 그래서 엄청나게 큰 침대 두 개랑 넓은 거실이 전부 내 차지였다.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으니 본격적으로 마산 구경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은 곳이니까 밤에 돌아다녀도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오랜만에 밤에 다니는 건지 아니면 마산 시내가 유흥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유독 7080 노래방과 술집에 중년분들이 술을 잔뜩 먹고 시끄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짓말 100배 더 보태면 서울과 비교했을 때 마산에 멕시코만큼 경찰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한테 항상 밤에 골목길을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
대로변으로 가면 골목길보다 1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렸기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거짓말하고 항상 골목길로 다녔던 기억이 난다. 말 드럽게 안 듣는 손녀는 세월이 흘러도 밤중에 골목길을 택했다.
할아버지가 일본 책을 보고 직접 설계해서 만든 집이라 구조가 굉장히 독특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집 옥상에 올라가면 달동네가 보였는데 그곳은 할아버지가 계시던 이 공간과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 같았다. 달동네에서 쏟아지던 불빛들을 하나씩 세다가 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옥상에서 내려왔던 기억도 떠올렸다.
회를 너무 많이 먹어서 체력이 남아돌았는지 나는 어렸을 때 옥상에서 바라만 봤던 달동네를 향해 걸어갔다.
멕시코나 콜롬비아에서 달동네를 구경 간다는 건 자살하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그곳 근처를 쳐다도 보지 말라는 경고를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달동네의 분위기나 위치는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 산 꼭대기에 이동이 힘든 곳에서 겨우 매달려서 위태롭게 사는 모습인데, 집안 곳곳에서 불이 환하게 켜진 것을 보면 이곳도 따뜻하고 편안한 누군가의 보금자리이구나 싶다.
달동네에서 마산 시내를 둘러본 후 나는 다시 창동으로 내려왔다.
만쥬는 할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셔서 마산에 오면 엄마한테 받은 용돈을 모아서 할아버지께 고려당에서 만쥬를 사다 드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할아버지를 정말 많이 닮았다. 서로 만쥬를 좋아하고, 할아버지처럼 해외 출장을 다니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할아버지가 관심 있는 골동품에 나도 내 또래답지 않은 소장품이 정말 많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나의 짧은 마산 여행기는 끝이 났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어서 나는 어렸을 때만큼 마산을 찾아오지 않는다. 가끔 '할아버지 집을 내가 매입할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나에게는 수송동 파란 기와집이라는 큰 꿈이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집은 추억으로만 남겨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