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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pr 28. 2022

남아 있는 자들에 대하여

인간 세계에 대해 아직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3년 전에 나에게 '사채'라는 단어 대신 '투자'와 '수익률'이라는 말로 나를 몇 초간 설레게 했던 한 사채업자가 있었다.


1억을 투자하면 세금을 떼고도 한 달에 8백만 원을 내 통장에 넣어주시겠다는 산타클로스 같은 분은 지금도 활발히 사채와 종교 활동을 하고 계신다. 


나는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사채'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사채는 돈이 없거나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것인 줄 알았다. '사채'는 당당하지 못하니까 종로 곳곳에 놓인 전봇대 맨 아랫부분에 몰래 사채 광고 스티커가 붙어져 있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에게 10%의 이자를 주기 위해서 사채업자는 훨씬 더 큰돈이 필요하다.

평소 사채업자인지 모르고 그 사람 밑에서 실무 회계를 잠깐 배웠던 나는 내가 그에게 1억을 투자하면 1억 + 매달 8백만 원이 전부 내 돈이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1억은 내가 필요할 때나 원할 때 받을 수 있는 '나의 돈'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3년 전 나만 투자 (사채업자가 말하는 단어)를 하지 않았다.

그때는 누구보다 나를 믿고 일을 맡기던 사채업자에 대한 반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만 돈을 맡기지 않는다는 게 그 사람한테 미안했다. 내가 매 달 내 통장에 들어오는 800만 원이라는 수익을 포기한 이유는 단순하다. 딱히 한 달에 8백이라는 돈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 가족 중에 큰돈이 필요하거나, 병원비를 마련해야 한다면 어쩌면 나도 돈을 맡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3년 전에도 나의 금전적인 상황은 평탄했고, 돈에 있어서는 이성 관계보다 더 보수적인 나는 1% 대의 은행을 한 개인보다 더 신뢰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때 사채업자에게 투자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 역시도 한 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몹시 궁금하기도 했지만, 지금 새로운 곳에서 내 거래처와 새롭게 계약서를 쓰고, 출장도 다니면서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문을 좋아했고, 남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그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거의 알고 있다.


[이 전무님] [오후 3:01] 그깟 회사 같지도 않은 꼬라지에서 이사만 되면 뭐 하나요?

[이 전무님] [오후 3:01] 그나마 그걸로 같이 하자고 꼬시는 거 같고, 또 거기에 좋아라 하고 있겠지요
빙신들이 


그렇다.

그들은 회사에서 모두 잘렸기 때문에 더 큰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더 많은 돈을 사채업자에게 투자했다. 사채업자는 그들에게 그동안 정상적으로 받는 월급보다 훨씬 더 큰 액수를 매 달 그들의 통장에 보내주고, '이사'라는 직급도 붙여줬다. 


[이 전무님] [오후 12:48] 그래요? 독자생존?

[이 전무님] [오후 1:32] 븅신들끼리 뭉쳐있는 거지요
 지들을 누가 어디서 받아주겠습니까

[이 전무님] [오후 2:26] 아무튼 갸는 여기저기서 이미 새는 바가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갸를 믿고 따르는 애들만 또 짱구 되고 인생 종 치는 거지요

[이 전무님] [오후 3:02] 서로 짱구 굴리면서 지가 더 이익을 보거나 생존을 하거나 먹고 살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결정했을 터이니 모두 지들 책임이지요

[이 전무님] [오후 3:04] 예전부터 금융투자협회의 주식투자자를 위한 슬로건은 이러했지요
"주식투자는 본인의 판단과 책임"
이런 말처럼요


인생은 길게 봐야 한다고들 하니 지금 누구의 결정이 맞고 틀렸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더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버리고 개미처럼 매일 9시간씩 일만 하면서 2.7%의 은행에 돈을 저금하는 바보처럼 보일 테고, 내 입장에서는 이미 '나쁜 사람'으로 검증이 된 사람에게 요즘 유행하는 단어 '가스라이팅'을 여전히 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사람들로만 보인다.


오늘도 '횡령'이라는 기사가 떴다.

과거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횡령'은 인간 세계에서 꾸준히 일어날 것이고, 그에 따른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이 전무님] [오후 6:04] 개자식들 전부 다 깜방 가야 할 놈들입니다

[Sorita] [오후 6:08] 근데 요래 다들 활보하고 다니니 기가 차요 ㅎㅎㅎ

[이 전무님] [오후 6:19] 고름찬 뿌리까지 싹 도려 내지를 않아서 그런 거지요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처벌받지 않을 것이고, 처벌 수위도 감당할 정도라는 것을.


한편 그들을 용기 있게 처벌하지 못했다고 그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나 역시도 해코지 당할 까 봐 쫄보로 몇 개월을 지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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