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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y 05. 2022

제발 그만해 둬

다들 평안한 5월이 되기를

제발 그만해 둬
새장 속의 새는 너무 지쳤어
너도 알잖니

다시 생각해봐
처음 만난 그 거리를 걸어봐
나는 외로워

난 네가 바라듯
완전하진 못해
한낱 외로운
사람일 뿐야

들국화 '제발'


모 대기업에서 면접을 볼 때 관상쟁이를 옆에 뒀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내 주변에도 관상쟁이가 한 명 있다.

나랑 같이 사진 찍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관상쟁이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 사람은 얘보단 인물은 떨어지지만, 인간성은 이 사람이 훨씬 낫네

이 사람은 너랑 친해?
희한하네. 너랑 어울릴 사람이 아닌데......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본인 관상을 어떻게 봐 줄지 궁금해하겠지만, 나는 이 친구와 함께 있을 때마다 겪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상이나 내 얼굴이 딱히 궁금하지 않다. 이 친구 역시 내 관상에 대해 뭐라 콕 집어서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냥 내 관상이 본인이 보기에 나쁘지 않으니까 내 옆에 아직까지 붙어 있는구나 그렇게 알아서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이 친구는 내 글에 등장하는 사채업자 얼굴 역시 알고 있다.

사실 사채업자와 나의 인연은 오래됐다. 그래서 작년에 나는 남들이 이직하는 것처럼 쉽게 다른 회사로 갈 수 없었다. 현 회사는 한 달 전부터 나의 기본적인 평판부터 시작해서 금전 거래까지 전부 조사를 마친 후 나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일을 해도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경력이 단절되지 않은 채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나 나름 검증이 된 사람이다!)


솔직히 나는 사채업자라고 부르는 이 분에 대해서 상당히 죄송함도 느낀다.

이 분은 나에게 함께 일을 해보자고 몇 차례나 제안을 한 적이 있었고, 내가 과거 회사에서 좀 더 수월하게 지낼 수 있게 많은 힘을 써 주셨다. 대리일 때 만나서 과장일 때 겪었던 수많은 고비들을 그 사람 덕분에 넘긴 적도 많았다. 그래서 과거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 사람에 대해 안 좋은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의 가족들 역시 모두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우리는 친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관상쟁이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


그 사람은 너한테 해가 될 사람은 아니야. 돈이 배신을 하면 했지 그 사람이 너를 배신할 것 같지는 않은데?


사채업자이자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었던 그 사람은 관상쟁이 말대로 나에게 직접적은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분이 모든 것을 털고 지금까지 모아둔 엄청난 자금을 가지고 조용히 살기를 바랐다. 올해 초에 나는 그에게 '회자정리 잘할 수 있게 도와달라'라는 메시지를 받고, 최대한 다치지 않게 모든 것이 잘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이제는 내 브런치 독자님의 말처럼 더 이상 엮이지 않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벌은 받을 거라고 생각하며 넘기려고 했다.


어떤 일에 있어서 가끔은 끝장을 봐야 속이 시원한 나는, 솔직히 그와 관련하여 여전히 찝찝한 마음을 한 구석에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끝내도 되는지 아니, 이대로 덮어도 되는 건지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결국 사건은 터졌다.


애초에 뿌리를 도려내지 못한 것에 대한 대가는 작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 그분의 메시지는 내 마음을 참 슬프고 아프게 했다.


보내주신 자료는 잘 보았습니다.
서류는 상환계획서에 관련된 초안 자료이며 사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계획서는 파기되었음을 알려드리오니 업무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른 구체적인 근거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 계약서를 찾았고, 그 계약서를 검토하던 중 2022년 판 강화도 조약을 떠올릴 정도의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조항을 발견했다. 이 계약서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 나는 8년 전 그때를 떠올리며 답답함을 느꼈다. 나는 다시 그에게 짧고 공식적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답이 왔다.


고생이 많습니다.
일단 일을 복잡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
.......................
***의 공식적인 입장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5월은 가정의 날이다.

모든 사람이 가족과 화기애애하고 즐겁고 평안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그렇고, 한 때 나를 살펴 주셨던 그분도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이제 이 사건은 내 손을 떠났다.

그분이 듣고 싶어 하는 공식적인 입장은 전달되었고, 나와 그의 인연은 이것으로 정말 끝이 났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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