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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y 07. 2022

간송의 보물을 놓치지 마세요

전시기간 1달 남았음

코로나 백신 3차를 맞았다.

출장만 아니면 백신을 안 맞을 텐데 나는 필수접종자라서 어쩔 수 없이 모더나 3차를 예약했다. 모더나 2차 맞고 밤에 자다가 현미 찜질팩 안고 울었던 기억이 나서 3차 맞기 전에 겁이 많이 났다. 이 고통을 자진해서 다시 겪어야 한다니 아찔했다. 백신을 맞고 푹 쉬고 그날은 목욕도 하지 말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나는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으로 향했다. 백신을 맞고 12시간이 지나야 몸에 반응이 오기 때문에 일분일초라도 빨리 놀고 싶었다.

 

성북초등학교에서 버스를 내리면 성북파출소가 바로 보인다.

성북파출소를 끼고 길상사로 가는 골목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집이 있다. 서울에서 이 정도 퀄리티에 이 가격으로 빵을 파는 곳은 아직까지 못 본 것 같다. 소금빵도 유명하니 꼭 찾아가서 먹어보자.



멕시코에서 맛없는 빵만 먹다가 이곳에 오니 정말 행복했다. 개인적으로 '장발장이 훔친 빵' 하고 치아바타를 좋아한다. 독일식 건강빵도 많아서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오늘의 목적지는 간송미술관이다.

간송미술관이 보수를 앞두고 2달 정도 잠깐 문을 열었다. (이 글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간송미술관 홈페이지 들어가서 예약하고 구경하러 오셨으면 좋겠다.)


간송미술관은 세 번째 방문이다.

첫 번째는 학교 다니면서 교양 수업 때 의무적으로 간송미술관에 방문해서 사진을 찍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때는 교과서에서 봤던 김홍도나 신사임당 그림 등을 보면서 별 감흥이 없었다. 할아버지 영향을 받은 탓인지 그때는 다들 이 정도 그림이나 도자기 한두 개쯤은 집에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두 번째는 동대문 DDP에서 간송미술관 전시가 열렸을 때 이순신 유물을 보러 갔었다.

입장료가 만원을 넘었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전시관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오늘 나는 휴가를 내고 간송미술관에 방문했다.

 


간송미술관 바로 옆에 성북초등학교가 있다. 간송미술관을 찾는 많은 어르신들이 택시와 개인차를 타고 오셔서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글씨가 다소 무색할 정도였다


간송미술관 입구에 귀여운 탑 두 개가 있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소형의 석탑으로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갖추었다. 기단부에 연꽃이 장식된 점으로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한다


살짝 가분수처럼 보이는 이 석탑은 귀엽다. 할아버지도 간송미술관에 왔다 가셨는데 그때 이 석탑을 보셨겠지


3단의 사각형 대좌 위에 앉아있는 비로자나불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이 불상 역시 고려 초기 불상으로 추정한다


보화각은 1938년에 완공된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이다. 보화각이란 '화려한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으로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가 후대에 전해지기를 기원하며 지은 이름이다


6월 5일 전시를 끝으로 보화각은 보수정비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될지 모르니 미술관 예약을 못했다면, 이 건물이라도 둘러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어렸을 때 보던 안테나다. 간송미술관에서 한양도성도 보인다. 보화각 안에 유리창도 옛 모습 그대로다. 할아버지도 이 창밖을 보셨으려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학교를 다녔었다. 그래서 이 건물을 보니 어렸을 때 생각이 정말 많이 나더라


보화각 2층에는 빈 쇼케이스가 있는데 온습도 유지가 어려워서 작품에 손상을 주기에 교체가 된다. 이렇게 빈 공간을 전시하는 목적은 '잃어버릴 풍경을 전시'하는 것이라는 게 슬펐다


할아버지 유물을 경남대에 기증한 이유도 한 개인이 관리하기에 힘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관사에 살면서 할아버지께서 주신 그림 3 점이 벽에 비가 새는 바람에 전부 버려졌다. 경남대에서는 당장 전시는 안 하더라도 온습도 유지와 유물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감사하다.


1970년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간송미술관 도록이다. 할아버지도 분명 도록 하나 사서 가셨을 텐데......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면서 보이는 공간인데 이곳도 곧 없어질 거다. 1층 전시실은 사진 촬영 금지라 아쉽게도 문 앞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라 기억나는 대로 전시되었던 작품을 나열하자면


권우, 장승업 <송하녹선>, 김홍도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는 그림인데 매우 해학적이다>, 강희안 <청산모우>, 안견 <추림촌거>, 강세황 <묵란>, 심사정, 정선 <강진고사>, 신사임당 <포도> 등등


작은 공간에 작품이 진열되어 있어서 밑에 해설을 다 읽고도 30분 만에 관람을 마쳤다. 더 많은 작품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보화각의 창문이다. 이런 창문도 전부 다 교체가 될 예정이다


간송미술관에서 내려다보이는 개인집인데 이렇게 사진 찍어도 되나 싶다.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집과 너무 비슷해서 한참 담벼락에서 구경하다가 왔다. 오른쪽은 보화각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다. 이 분이 문화재를 발견한 곳 중에 인사동에 있는 모 책방도 있는데 사람들이 다들 모른다. 나는 몇 번 들어가 봤는데 전부 한자라서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간송미술관을 보고 나서 최순우 옛집도 들렀다.

성북파출소에서 길 건너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골목에 있어서 찾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이정표가 있기 때문에 관심만 있다면 누구든 찾아올 수 있다


할아버지 집 정원에도 이 석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최순우 옛집 역시 내가 꿈꾸는 집 중에 한 곳이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집 분위기도 달라질 것 같은 아늑한 곳이다


이런 나무 창도 매우 좋지만 유리가 얇아서 겨울에는 생활하기 몹시 추울 듯하다. 참고로 내부는 관리인에게 이야기하면 들어갈 수 있으니 꼭 들어가 보자


작은 공간이지만 번잡스럽지 않게 모든 것이 조화롭게 잘 꾸며져 있다


마루에 앉아서 쉬는데 그냥 이 공간, 이 시간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이곳이 계속 유지될 수 있게 후원해주신 홍라희 여사님 이외에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하다


내부는 이런 모습이다. 다들 밖에서만 구경하던데 여기까지 왔다면 꼭 내부에도 들어와서 둘러보자. 밖에서 보는 거랑 차원이 다르다


저 그림을 어디서 봤을 까 했는데 김환기의 작품이었다! 홍라희 여사님이 기부하셨다고 한다


뜬금없이 김환기의 작품도 보고, 최순우의 방도 조용하게 둘러보는 이 순간이 정말 좋았다. 앞으로 휴가 자주 내고 평일에 놀러 다녀야겠다


주변의 집과 어린이집 사이에 위치해 있는 최순우 옛집이라 지나치기 쉽지만 성북동까지 와서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곳이다


세상과 잠시 동떨어진 듯한 공간에서 일 생각도 잊고 마음 편히 쉬고 있는데 어디서 괴성을 지르면서 싸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택시 안에서 무슨 사달이 났는지 50대 여성이 남편과 할아버지 한 분을 대신하여 택시 기사한테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성북동은 고요한 아침의 동네인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예전에 Y가 사건 처리할 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신경 안 쓰일 수가 없다고 한 게 기억이 났지만, 궁금해서 도저히 모른 척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옷차림을 보니 여자랑 남자 그리고 할아버지 역시 간송미술관 방문하려고 택시 타신 것 같은데 여자가 택시 기사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최순우 옛집은 물론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렸다. 분명 한국말을 하는 것일 텐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 다행히 경찰이 오자 여자 목소리는 작아졌고, 침착해진 것 같았다.


택시 기사도 손님 중에 별의별 사람을 많이 만나겠지만 사실 나 역시도 불편한 택시 기사를 몇 번 만났던 기억이 있어서 혼자서는 절대 택시를 타지 않는다. 외근 가는 길에 서둘러서 택시 앞자리에 탔다가 혈이 막힌 것 같다면서 내 귀를 주물러대던 택시기사부터 시작해서, 뒷좌석에서 쉬지도 못하게 말을 걸어대는 아저씨까지 별의별 일들을 겪었다. 그래서 해외 거래처랑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마을버스 타고 이동하다가 목적지 근처에서 내려서 걸어서 간다.


성북동 택시 사건은 도대체 기사가 뭘 얼마나 잘못했길래 여자가 그렇게까지 괴성을 질렀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 크고 듣기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직 백신 후유증이 없어서 한양도성길도 걷기로 했다.


도성 사이로 보이는 간송미술관이다. 보수공사 후 보화각 벽이 허물어지고 엘리베이터도 생긴다는 게 오히려 아쉽다


역시 남들이 일할 때 노는 게 가장 재밌는 것 같다. 이 도성길을 쭉 따라서 성균관대를 지나 안국역으로 내려왔다


보화각 보수 전 마지막 모습과 7년 만에 다시 만난 간송의 소장품을 보고 왔던 하루는 정말 뜻깊었다. 이제 2년 후 다시 만나게 될 간송미술관 전시는 어디에 있을지 모를 남편과 함께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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