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부킹 첫날_멕시코 시티 reforma 대로

어차피 집에 못 가는 거 후회 없이 놀자

by 문간방 박씨

오버부킹 첫날이 밝았다.


눈을 떴을 때 딱 한국에 와 있으면 좋은데, 나는 아직 개에로멕시코에서 제공한 1박에 20만 원짜리 호텔에 묵고 있다. (교통편이 좋아서 가격이 비싼 것 같다. 호텔 시설은 오래됐고 식당 음식도 별로다) 한국에 가는 비행기는 4일 뒤에나 있으니 나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상황에 최선을 다해서 놀기로 마음먹었다.


아침부터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반신욕을 40분 한 후에, 1층에 위치한 식당에 내려가서 항공사에서 제공한 식사 바우처를 내고 조식을 먹었다. 호텔 조식을 든든히 먹고 맑은 정신으로 멕시코 시티 관광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나초 안에 닭고기가 들어있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파파야랑 망고 그리고 도넛도 많이 먹었다. 그래 봤자 멕시코에서 나는 날씬한 편에 속하니까!


밥을 다 먹고 일어서는데 이 호텔에서 청춘을 다 바친 것 같아 보이는 할아버지 직원 한 명이 뛰어와서는 팁을 달라고 요청했다. 개에로멕시코의 횡포에 출근도 못하고 멕시코 시티에서 국제 미아로 남겨진 내가 오히려 체류비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호텔 직원이 팁을 달라고 하니 화가 났다. 팁은 서비스를 제대로 받았을 때 주는 거다. 따뜻한 라떼를 시켰는데 이 직원은 나에게 차가운 우유를 갖다 준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이 호텔은 개에로멕시코에서 제공한 숙소이니 이것들이 모두 한패거린가 싶었다.


나 돈 없어!


짧은 스페인어 한 마디를 하고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실제로 내가 가진 현금은 전부 호텔방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처럼 계좌이체를 해 줄 수도 없지 않은가? 조식을 먹고 호텔방으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앞으로 남은 4일 동안 이 호텔에서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삥 안 뜯기게 잘 버티자고 굳게 다짐했다.


아침 10시에 멕시코 시티 제2 터미널에 가서 다음 날 묵을 숙박권과 식사 바우처를 받은 후 나는 멕시코 시티 지하철을 타고 본격적으로 일정에도 없는 관광을 시작했다.


멕시코 시티 지하철 요금은 3백 원이다. 지하철 노선이 복잡하다고 겁먹지 말자. 서울에서 지하철 환승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멕시코 지하철 정도는 껌이다


7년 전 멕시코 시티에 휴가 내서 놀러 왔을 때 나에게 인생 빵으로 기억 남는 곳이 있다.

ESPERANZA라고 나에게는 코끼리 빵집으로 불리던 곳인데 (빵가게 마크가 코끼리다) 대형 사이즈 빵이 2~3천 원에 거의 다 살 수 있고 조각 케이크도 한국의 1/3 가격이다. 사실 출장으로 왔다면 이 빵집도 못 가볼 뻔했는데 어찌 되었건 나에게 남는 건 시간이니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가고 싶은 곳은 전부 가기로 했다. 여기 빵집도 들어가서 먹고 싶었던 빵과 쿠키를 사고 영수증은 한국에 돌아와서 보험청구를 하기 위해 전부 챙겼다. (오버부킹도 보험청구가 가능하니 먹고 마신 영수증 전부 다 챙기기)


왼쪽 사진의 치즈케이크가 1200원이다. 각종 쿠키와 빵에 눈이 돌아갔지만 나 혼자 다 먹을 자신이 없었다


오늘은 그냥 걸었다.

멕시코 시티의 본격적인 관광을 위해 슬슬 시동을 걸었다. 나 없는 7년 동안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7년 전에도 무지하게 고민이 많아서 도망치듯 떠나왔던 멕시코 시티였는데, 지금도 고민은 많다. 앞으로 7년 후에도 또 다른 고민이 있을 테니 두고 봐라.


멕시코에는 메트로 2층 버스가 있다. 여기도 빨간 2층 버스인데 왜 런던만 2층 버스가 유명할까?
멕시코 시티 대로에 보라색 꽃이 활짝 폈다. 하늘은 맑고, 날은 따뜻했다
사진을 찍으니까 앞에 오토바이 오빠가 슬금슬금 오토바이를 치워주더라. 이건 멕시코 시티 독립기념탑이다. 옆에 쉐라톤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예상치 못한 기념품들을 구입했다


호텔 기념품샵이 비쌀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중남미의 고급 호텔에 있는 기념품샵 물건 가격은 시장보다 저렴한 게 많다. 시장은 물가 상승률에 따라 가격이 변하지만, 호텔은 옛날 가격 그대로 붙여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품질 좋고 고급진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들어간 김에 호텔 화장실에서 손도 씻고 현금이 얼마 남았는지 파악도 했다.


멕시코 시티 콧바람을 쐐니 기분이 좋아졌다. 만약 신이 있다면 이 또한 그의 뜻이 있어서 체류를 하게 된 걸까? 대로변에 대형 야자수들이 많았다
멕시코에는 오래된 차들이 정말 많다. 이 차는 언제 생산된 걸까? 너무 귀엽다!


아에로멕시코에서는 공항과 호텔을 오고 갈 수 있는 택시 티켓을 매일 제공해 줬다. (이 또한 당당히 요구해서 받아낸 거다. 가끔 택시 티켓은 빠뜨리고 주지 않으니 바우처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전부 확인해 보고 없으면 내놓으라고 말을 해야 한다. 직원들 교육이 아주 엉망이라 하나하나 뭐가 빠졌는지 가르쳐야 한다.)


항공사와 계약이 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데 갑자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택시기사가 상황을 살피더니 갑자기 나보고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했다


하필 내 호텔 근처에서 큰 시위가 열려서 주변 도로는 마비가 됐고, 시위대를 경찰이 둘러싸고 있었다.

비록 원치 않게 체류를 하고 있지만, 오늘 하루가 예상보다 좋아서 기분 좋게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면서 마무리를 하나 싶었는데, 내 인생은 아직도 모든 게 예측 불가였다.


교통경찰이 제공한 트럭을 타고 도로 한가운데에서 호텔까지 이동했다. 하필 치마를 입고 있어서 쩔쩔 매고 있었는데, 듬직하고 커다란 경찰 손을 잡고 무사히 탑승했다
시위대 때문에 도로에서 이동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을 전부 실어 나르는 교통경찰들도 대단해 보였다


이렇게 오버부킹의 첫날은 무난히 (?)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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