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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r 04. 2020

살아가는 방식은 다 달랐다

홍성 짝꿍 O 이야기

난 눈물샘이 안 뚫린 채 태어났다.

험한 세상 살면서 울지 말라고 태어날 때부터 눈물 구멍이 안 뚫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어려서부터도 잘 울지 않았다. 엄마 뱃속에서 막 태어나서도 산부인과 선생님한테 다른 아가들보다 몇 대 더 맞고 나서야 울었다고 한다. 십 대 때의 꿈이 20대 초반에 나의 해이한 정신력과 부족한 끈기로 끝이 났을 때에도 울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을 먼저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한 번쯤은 화장실에 가서 운다고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운다고 누가 내가 할 일을 끝내주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하는 일을 대타로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동안 몇몇 사람을 만나면서도 매달린 적도 없었고 아쉬움에 운 적도 없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회사에서 울고 떼를 좀 썼더라면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 상대방한테 좀 더 여성스럽고 보듬어 주고 싶게 보일 수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은 있다. 하지만 천성은 안 바뀌더라. 나는 역시 나였다. 울기보다는 그냥 내 앞가림하기에 바쁘고 앞만 보고 살아왔다.


홍성에서 초등학교 때 짝꿍이었던 O는 나보다 훨씬 더 강한 아이였다. 점심은커녕 물체주머니도 못 챙겨 오던 O에게 내 것을 조금이라도 나눠 주려고 해도 O는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당시 나의 8세 인생에 있어서 내 애를 가장 많이 태웠던 유일한 사람이 바로 O였다. 체육대회 때 달리기를 할 때면 누구보다 이를 악물고 뛰었던 O가 기억이 난다. 그래서 항상 나는 손목에 O보다 뒷자리 숫자의 도장을 받아야 했다. 교실 청소를 할 때나 당번일 때도 O는 열심이었다. 친구가 많지 않았던 나에게 O는 든든한 짝꿍이자 친구였다. 


최근에 O와 연락을 하면서 나는 O의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O는 아침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을 몇 년 사이에 겪으면서 자존감이 바닥 밑 마이너스 150미터는 더 들어가 있었다. O는 더 이상 강하지 않다. 좋은 배우자 만나서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아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을 받아서 살아가는 이 평범한 삶이 O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8살 때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그동안 O와 나의 살아오던 환경은 달랐던 것 같다.

나는 어렸을 적보다 웃는 사진이 많아졌는데 그때의 씩씩하고 밝게 웃던 O의 모습을 이제는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보아 왔던 사람들과는 너무도 다른 O의 삶에 나는 약간 혼란스럽다. 만약 내가 몇 달 뒤에 홍성에 내려갔을 때 O가 말했던 상황을 내 눈앞에서 보고 맞닥뜨리게 된다면 나는 과연 그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몇 년간 힘든 생활을 했던 O는 사실 내 전화번호가 삭제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나한테 전화할 용기조차 없었던 O에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고 얘기를 해 주긴 했다. 그러나 나는 얼른 O를 안아주고 다친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다기보다는 막상 홍성에 가는 것이 망설여지고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작년에 내 최애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동백이는 드라마 속에서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옹산처럼 홍성에서도 소문은 빨리 퍼졌다. 하지만 옹산에서의 동백이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연봉 10억의 전 남자 친구도 있고, 동백이가 동네 아주머니들한테 억울하게 당할 때마다 뛰어오던 씩씩한 아들도 있었고, 동백이를 위해서 평생 동안 돈을 모아둔 엄마와 무엇보다 동백이 옆을 지켜주고 평생을 함께 할 든든한 용식이도 있었다.


만약 이 네 명이 없었다면 옹산의 동백이는 향미와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못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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