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꿈이었던 B대리 이야기
야! 야! 너 빨리 와서 이거 포장해!
야! 이거 가져와!
야! 이거 빨리 접어!
내가 우리 회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B대리는 개만도 못하게 "야"로 불리고 있었다.
C공장은 C에서 가장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로 소문이 났다. 누구나 입사를 원했다. 그런 만큼 장기근속자가 많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퇴사자가 더 많았다. 서울의 한 사무실에 근무하면서도 나는 종종 C공장의 소식을 들었다. 퇴사를 하는 직원들은 퇴사 직전에 나에게 연락을 했고 그들이 얘기하는 퇴사의 이유도 알게 됐다.
C공장에 내려가면 그 주변 식당에서 공장 사람들과 회식을 했다. 밑에 직원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상사들만 회식 자리에 참석을 했다. 그 자리는 그다지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다들 술을 잔뜩 먹고 서로를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그들 나름의 고민과 근심을 가지고 나에게 각자 소주잔을 내밀었고, 내 발밑에 화초들은 나 대신 소주를 잔뜩 마시게 됐다. 고민거리를 털어놓지도 못하는 C공장의 사원과 대리급들은 끊임없이 밀물 썰물처럼 들어오고 나갔다. 안 그래도 사람 얼굴과 이름을 못 외우는데 직원들 이름을 외울만하면 퇴사하고, 새로운 이름을 다시 얼굴과 매칭 시켜서 외워야 하니 어느덧 내 책상 앞에는 C공장 직원들 이름이 포스트잇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B대리가 여기서 생산직 일만 하기에는 아까운 사람인데...
B대리는 생산직에 있기 전에 다른 회사 사무직 일을 2년 정도 하다가 C공장으로 이직을 했다. 전 직장이 업무가 힘들고 같이 일하던 사람에 치여서 그만뒀다고 한다. 어딜 가나 퇴사의 이유는 거의 비슷한 듯하다. 지금 B대리는 내가 하는 일을 해 보는 것이 꿈이라는 감사한 얘기를 했다. 영어가 쥐약이라서 퇴근 후 틈틈이 공부를 한다는 B대리에게 나는 막상 닥치고 먹고살려면 영어든 뭐든 다 하게 되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다.
B대리와 일을 3년째 하고 있지만 나는 B대리의 얼굴을 안타깝게도 기억하지 못한다. C공장에 내려가더라도 B대리와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다. 1년에 한 번 정도 B대리가 먼저 나에게 와서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입니다"라고 얘기를 해주면 나는 목소리를 듣고 B대리인 줄 안다. 사람 얼굴 익히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카톡 대문사진에 얼굴 사진 좀 올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습니다. ~하겠습니다"로 대답하는 B대리는 발성도 좋아서 아나운서 했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책임감 있는 태도와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과 끊임없는 야근에도 긍정성을 잃지 않는 모습에 소방관이나 경찰도 잘 어울렸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어김없이 상사에게 화풀이를 당하는 걸 보게 된 나는 B대리의 기분도 풀어줄 겸 전공과 같은 개인사에 대해 물어봤다. 경찰행정을 전공한 B대리는 경찰을 준비하다가 크게 다쳐서 수술을 6번이나 한 후에 꿈을 포기했다고 한다. 군대를 못 가서 대신 경찰로 다녀왔다는 B대리의 말투 속에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한 듯했다. 하지만 뒤이어 B대리는
저한테 맞지 않은 거라서 안된 거라고 생각해요
라며 호탕하게 웃고 넘겼다.
어떻게 하면 B대리가 덜 힘들 수 있게 근무할 수 있는지 C공장과 업무를 할 때 항상 생각을 한다. 업무를 하다가 상사나 팀에 의견 제시를 했다가 오히려 면박만 당하고 이제는 업무에서 배제가 된 B대리에게 나는 끊임없이 업무 상황을 전달해 준다. 사실 그게 내가 일하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갑작스럽게 중국에서 급한 샘플 요청이 와서 C공장에 연락을 했다. C공장에서 본사까지 퀵으로 전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급히 인편으로 샘플을 받았다. L차장이 급히 나에게 들고 온 샘플 박스를 열어보니 샘플 박스 안에 당 떨어지면 먹으라는 B대리의 귀여운 메모와 함께 과자가 들어 있었다
B대리는 아나운서를 하든, 경찰을 하든 뭘 하든 그 분야에서 본인이 맡은 일을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시국에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게 다행이라던 B대리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버티는 정신력과 긍정 에너지를 멀리 있는 나한테까지 전달해주는 B대리를 오늘도 나는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