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통통이 고모
너는 온순한 남자 만나야겠다
요 며칠간 아빠한테 이런 얘기를 듣고 있다.
조카와의 동거가 2개월이 지나가면서 우리는 거리감이 없어졌다. 거리감이 없어지다 보니 어린 녀석이 종종 선을 넘고 나에게 덤빈다.
본인 뜻대로 안 되는 것은 떼를 쓰고 급기야 상대방을 주먹으로 때린다. 성질을 못 이길 땐 어린이 의자를 가지고 와서 나와 눈높이를 맞춰서 얼굴을 때린다.
어린이가 때린다고 안 아픈 게 아니다. 쪼그마한 손으로 있는 힘껏 때리기 때문에 가슴이나 머리 그리고 배에 맞으면 정말 아프다.
아오 진짜...... 어딜 감히 덤벼! 고모한테 맞아볼래?
라며 나도 똑같이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내 방문을 닫으려고 하면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온다. 나는 오빠를 부르기 위해 "아빠"라고 외치면, 진짜 우리 아빠가 "왜"라고 대답을 한다. 이런 어지럽고 힘든 상황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빠 앞에서 쥐어박으면 마음 아파할까 봐 참을 만큼 참았다. 하지만 이제는 역병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판에 나도 참는데 한계가 왔다.
주먹으로 맞으면 나도 주먹으로 때리고, 손바닥으로 팔을 맞으면 나도 손바닥으로 팔을 때린다. 물건을 집어던지면 그 물건 주워와서 때린다. 그래도 울지 않는 거 보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든다. 어제는 성질난다고 가지런히 개어둔 내 속옷 가지를 전부 풀어서 방바닥에 던져서 또 한바탕 '강북 대첩'을 치렀다.
이 생활도 힘들다. 남자들이 자기 공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그게 남자의 성격이나 독특한 특성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내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퇴근하고 나면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스트레칭도 하고, 조카님이 티브이를 독차지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뉴스도 봐야 한다. 스페인어 동사 변형도 외워야 하고 회사도 그만 다니고 싶어서 이직도 알아보고 있다. 나 나름 스케줄이 타이트하다. 무엇보다 내 일정에 변동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는 나이기에 조카가 내 방에 들어와서 애지 중지 모아둔 빈티지 반지와 팔찌를 차 본다고 1시간 동안 내 책상 위에 올라와있는 것도 이제 못 참겠다.
그래도 조카가 뒤끝이 없다. 아침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라고 방문을 두드린다. 출근할 땐 고모 저녁에 봐요~라고 인사를 한다. 마스크를 깜박 잊고 그냥 나가면 "내가 마스크 어디 있는지 알아. 나는 다 알아" 하면서 마스크도 가져다준다. 이렇게 출근을 하고 나면 사무실에서 나는 온종일 마음이 찝찝하다.
어제 괜히 때린 것 같고, 두 대 말고 한 대만 때릴 걸 그랬나...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정신없는 회사 생활 속에서도 냉철하게 내 할 일만 꿋꿋하게 잘해온 내가 6세 조카님한테 흔들리고 있다. (5세인 줄 알았는데 6세라고 알려주더라)
어린이집 휴원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휴원을 하더라도 숙제라도 잔뜩 내줘서 색칠공부나 만들기라도 하면서 조용히 학습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불금에 조카가 떠나고 조용해진 집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토요일 아침이 밝았을 때의 고요함과 텔레비전을 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여유도 좋다.
회사에서 재택근무라도 시켰으면 큰일 날 뻔했다. 사장님이 선견지명이 있으셨네!
나를 불러내기 위해 오늘도 6세 조카는 내 방문 앞에 무전기를 놓고 신호를 보냈다. 내가 6살이었을 때는 홍성에서 저녁 먹고도 나가서 친구들하고 뛰어놀았던 것 같은데 지금의 조카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항상 더 잘해줘야지. 오늘은 더 참을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하지만 자기 직전엔 항상 버릇을 어떻게 고쳐놓을까?라는 고민과 화를 참으며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