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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겁 없이 떠난 러시아 여행기

러시아 음식 사진만 한가득

by 문간방 박씨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여기 문 앞에 서 있어


엄마는 화장실을 자주 가신다.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실 때면 나를 화장실 출입구 바로 앞에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집 밖에 나가면 엄마의 보디가드다.


지금까지 몇 번 해외여행을 다녀왔는지 세어 보지는 않았다. 브런치에서도 세계 일주하시는 분들의 글을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분들에 비하면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닌 축에 속하지 않는다고 본다. 내가 중국, 유럽, 러시아 그리고 중남미 여행을 다닐 때마다 내 팔짱을 꼭 끼고 다녔던 여행 동지가 한 분 있다. 출장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모든 여행은 엄마와 함께였다.


엄마와 나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그래서 여행 스타일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같이 다닐 수 있다. 엄마와 내가 이번 여행은 어디로 가자!라는 결정을 내리면 모든 여행의 계획은 엄마가 짠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엄마는 취미로 컴퓨터 자격증을 몇 개 따 두셨다. 그래서 엄마 또래의 다른 분들보다 컴퓨터를 잘 다루신다. 하지만 옛날 사람이라서 모든 건 출력을 해서 직접 보시는 게 속 편하시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 다니면서도 내가 회사에서 몰래 출력을 해온 출력물을 들고 우리는 여행을 다닌다.


엄마의 임무는 10일의 여행 계획을 짜고 비행기 티켓까지 예약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현지에서 쓸 돈을 환전을 해 온다. 나 혼자라면 무서울 것 같은 해외의 어느 곳에서도 엄마와 함께 다니는 순간 나는 엄마의 보호자가 된다. 하지만 밖에서도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한다. 공항에서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해 둔 면세품들을 찾는 순간부터 엄마는 면세품 비닐봉지를 몇 개 더 받아오라고 꼭 당부하신다. 면세품 담는 비닐봉지가 꽤나 튼튼하고 유용하기 때문이다. 엄마 말을 듣고 몇 개 더 받으면 경유를 할 때나 현지에서 쇼핑을 할 때 반드시 유용하게 사용한다.


환승을 하느라 공항에서 3~6시간까지 체류를 해왔다. 이 경우도 나 혼자였다면 무지하게 심심했을 텐데 엄마와 함께라서 심심한 적이 없었다. 작은 공항이든 큰 공항이든 우리는 면세품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공항 안에서 밥을 사드리고 싶어도 곧 기내식을 먹을 건데 뭐하러 돈을 쓰냐며 손사래 치시는 엄마 덕분에 나도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 보통 따뜻한 라테 한잔 시켜서 카페에 앉아서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사진작가였던 할아버지를 닮은 엄마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신다. 덕분에 나는 여행지에서의 사진이 정말 많다. 자유여행이라서 엄마가 계획했던 것들이 꼬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유럽의 경우 갑작스러운 파업 때문에 엄마가 보고 싶었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못 가게 된 상황이 발생한다. 10시간 넘는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못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어이없는 상황에 문 앞에서 분노를 하신 적이 많다. 그 분노가 고스란히 나한테 돌아와서 나에게 짜증을 내신 적도 많다. 하지만 나는 여행은 길을 잃어버리거나 계획에서 틀어진 순간부터 진짜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했다. 엄마가 짜증을 내 봤자 엄마가 타국에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경우 모든 돈은 내가 가지고 있지만 호텔로 가는 지도나 현지 지하철 노선도 전부를 엄마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헤어질 수 없는 여행 동반자이다.


2016년 가을에 엄마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러시아에 갔다. 죽기 전에 러시아는 꼭 가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을 하셨는데 2016년의 어느 날 러시아 환율이 대폭락을 했다. 물가가 세기로 악명 높은 러시아라서 지금까지 망설여 왔었는데 우리는 환율 덕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호텔과 비행기를 예약해서 다녀올 수 있었다.


20160924_064002.jpg 우리의 아침 식사는 엄청나다. 아침엔 과일과 요구르트는 필수다


20160924_064927.jpg 엄마는 러시아 연어가 유명하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보시고는 집에서 직접 만드신 초장까지 챙겨 오셨다! 호텔 직원들이 정체불명의 소스에 놀란 것 같았다


20160926_173227.jpg 화덕 피자를 만원 정도에 먹을 수 있었다. 다들 1인 1판씩 먹던데 엄마랑 나는 1판 시켜서 4조각씩 나눠먹었다


20160928_070754.jpg 연어랑 광어일까? 매일 아침은 회로 배를 채웠다. 살면서 연어를 가장 많이 먹었던 듯


20160930_174700.jpg 뭔지 잘 모르고 시켰는데 러시아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었다. 안에 크림치즈가 한가득 있었다. 맛있게 먹었으니 칼로리는 생각 안 했다


20161001_174921.jpg 2만 원에 먹었던 양고기였다. 음식 물가는 외국이 더 싼 것 같다.


20161001_174934.jpg 주먹밥 같았던 음식이다. 포도잎 안에 밥과 소고기 다진 것이 들어있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인가 보다


엄마는 요즘도 러시아에 다시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볼거리도 많고 먹거리도 많았다. 러시아 알파벳은 하늘 높이 들어 올려서 땅바닥에 사정없이 내팽개쳐진 것처럼 생겼다. 이런 알 수 없는 러시아 글자 때문에 현지에서 고생을 무지하게 하긴 했었다.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에는 그 문자마저도 눈에 익더라.


연휴의 마지막 날, 4년 만에 러시아 음식 사진을 보니 내일 출근하는 게 너무 괴롭다. 마침 내일 출근하자마자 러시아 업무부터 처리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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