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쩔수 없이 이마 위에 D를 뒤집어 쓰는 여자
알파벳 D를 자기 이마위에 써보라고 하면
혹자는 내가 보는 측면에서 D자로 쓰고
또 다른 이는 상대방에게 D가 보이게 뒤집어 쓴다
나는 후자에 속한 인간으로
나보다는 남의 시선이 더욱 중요한 사람인가보다
퇴사라는 단어는 서서히 내 안에 박혔다.
거지같은 상사때문에 홧김에가 아니라
속썩이는 협력회사 담당때문에 더러워서가 아니라
잘 맞지 않는 커플사이처럼
서서히, 천천히,
그렇게 단단해졌다.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라는 열에
은근히 익어 죽지 않도록 빠져나오기를 다짐했으나
우아한 핑계 (또는 구실)이 필요했다.
비록 나는 지금 당장 돈도 직업도 없는
한량이자 백수이지만
꿈은 가지고 있는
아직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멋진 젊은이라고
D를 타인에게 잘 보이도록 뒤집어 쓴다
실상은 그저 회사 밖으로 떨어져나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길 잃은 백수인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