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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Feb 22. 2017

Scene #4

아마 그 시간들은 어린 시절 햇살이 좋던 날,  아무 일없이 마당에서 흙장난하던 어느 때.

흙 속에서 발견한 사금파리를 이리저리 비추어 가며 영롱한 빛을 즐기던 순간.


세월이 지나고 어떤 일이 생겨도 손상되지 않는 어떤 것이 되었다.


그 후로도 그녀는 팔이 떨어져 나가거나 머리 한부분이 날아갔지만,

 여전히 감각은 온전했던 그녀의 몸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이 들지 않는 밤이면 사라진 팔이나 허공뿐인 머리가 무섭도록 아팠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녀를 구성했던 것은

누군가 날리거나 잘라내더라도 영영 그들이 가져갈 수 없었다.

세상에서 없어진 후에도 오로지 그녀에게만 속할 뿐이었다.



그날 걸었던 어느 길.

어느 시각의 어느 빛.

어떤 소리와 먼지들.

그녀가 겪었던 두근거림과 머뭇거림.

모두 소립자 혹은 양성자가 되어

동굴 속의 빛이 먼지이거나 물이거나 그 어느 것도 아닌 것처럼

그녀의 어느 부분이 되었다.


"조금 걸을까? 괜찮아?"

"어"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내가 맛있는 곳을 알고 있어."

오래 오래 지하를 헤매다가 찾아간 곳은 조그만 스낵바였다.

직장인들이 바쁜 아침을 때우러 오는 곳이었다.

그녀는 살짝 웃었다. 이런 곳을 언제 와본 거지?

"이곳이 맛있어."

둘은 엉거주춤 서서 둥근 플라스틱 대접에 담긴 어묵을 나란히 받았다.

엄마가 끓여준 것처럼 어묵이 퉁퉁 불어 있었다.

국물맛도 엄마가 오래 끓인 것처럼 짭잘하고 별 맛 없이 시원했다.

앞에 앉아 열심히 먹는 아저씨는 계속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뎅에선 말이야 무가 맛있는 국물을 다 빨아 먹지. 무를 먹어야 진짜야.

아저씨, 나 거 있는 무 좀 주시오."

그녀는 다시 피식 웃었다.

그 아이가 조그맣게 말을 건다.

"우린 왜 무를 안 주지? 달라고 할까?"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우물우물 오뎅을 먹고 그 집을 나왔다.

집에 가는 걸까?

다시 그애는 어디론가 간다.


그 애가 몇 가지를 묻고 그녀가 몇 번을 고개를 돌리는 동안,

고궁에 와있었다.

날마다 버스가 그녀를 실어왔던 길을 두 발로 되짚어 걸은 셈이다.

"다리 아프지는 않아?"

"응 조금."


하지만 다리가 아픈 걸 느낄 새가 없다.

작은 목소리로 얘기할 때 마다 귀를 쫑긋하면서

시선이 엇갈리게 고개를 잘 돌려야 했고,

간격이 너무 붙지 않게 걸어야 했다.

그녀에게 혼자 빨리 걷는 것은 자신있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나란히 거리를 두면서 얘기도 하면서

걷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녀가 들었던 말

그녀가 했던 말이

음소거가 된 채로

그녀의 어딘가에

아로새겨졌다.

남아있는 것은 햇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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