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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May 16. 2017

구렁

길을 가다가 자주 깊은 구렁에 빠지곤 했다.

나는 괴로와서 그 구렁에 천천히 빠지는 장면을 글로 써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구렁에 대해 글을 쓰려고 애쓸수록 점점  자세하게 구렁을 들여다보다가

그 속에서 영영 나올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확신이 들 뿐만 아니라

은근히 그 속의 풍경을 즐기기도 했다.

그 속의 있다는 것은 나를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럽게 했지만,

생생하게 아픈 것이 오히려 나를 숨쉬게 했다.


아프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그것만이 나를 느끼게 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찰나의 기쁜 경험은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오로지 구렁 속에서만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걸어 놓은 꽃들, 내가 달아준 이름표가 땅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름없는 조각들은 걸어서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거짓 환상을, 거짓 이상을 꿈꾸는 바보일까?

기쁨 뒤엔 환멸이 찾아왔다.


환멸은 추락이다. 존재는 구멍이 된다.

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 존재는 숨쉬는고통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구렁을 선택했다.

둔감하고 낮게 숨을 쉬면서.


-그래도 구렁에 빠지면 소리를 질러보지 그래.

-너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구렁에 빠져 보았어?

-운이 좋으면 누군가 지나다가 너를 발견할 수 있어.

-운이 좋았구나 너는. 나는 대체로 운이 좋지 않았어.

-저런

-제발, 그런 눈을 하지만. 나는 괜찮아.


그랬다. 사람들은 길을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내 작은 구렁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혹은 발견하더라도 아무도 그 구멍안을 들여다 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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