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그 유명한 기형도 시인의 '빈집'의 첫 구절이다.
하필 그는 사랑을 잃고 쓰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쓰다' 라는 자리에 들어갈 다른 단어를 꼽아본다.
적다, 남기다, 새기다, 끄적대다, 문자화하다, 풀어내다, 토해내다, 끄집어내다...
앞에서 뒤로 갈수록 쓰다의 동작을 대체하던 단어에서 그 전에 해야하는 행위로 바뀐다.
풀어내다, 토해내다, 끄집어내다....
혹 이 단어들과 비슷해 보이는 '울부짖다'나, '그리다'와 같은 단어도 있다.
그러나 그 단어들로 바꿔버리는 순간, 쓰다라는 단어가 가진 원래의 의미로부터 너무 멀어지게 된다.
쓴다는 것은 그래서 울부짖거나 맘 속에 그리는 것처럼 열중하고, 잠겨있는 상태가 아니다.
쓰기 위해선 내 속에서 뜨거운 울혈로 돌아다니는 그것을 들여다보거나 만져야 한다.
그것이 더럽건, 뭉쳐있건, 뜨겁거나 간에 손을 대고 시간을 들여 내 안에서 밖으로 빼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목도해야한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막혀버린 소리들,
가슴팍 근처에 묵직하게 멈춰버린 무게를
한꺼번에 왈칵왈칵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식도와 연구개, 입천장을 밀어내는 압력을 느끼면서
실을 자아내야 한다.
한순간도 도망가서는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쓰는 자는 아픈 자이다.
미련한 그는
아픔을 해방시키려고
그 아픔을 지독히도 오래 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