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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Dec 02. 2018

우정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

한 여자는 게으르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남자와 살다가 자기 삶이 피폐해진 것에 분노한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나있어 아무도 다룰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은 마치 그녀를 괴롭히려고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결혼 생활에서 한쪽이 책임과 노동을 함께 하지 않고 나몰라라 할 때 우리는 쉽게 분노할 수 밖에 없다.삶은 끊임없는 노동를 요구한다. 집에 들어오면 청소가 되어있고 빨래가 옷장 속에 개어져있고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지 않고 냉장고에 썩은 음식이 없이 먹을만한 것들을 바로 먹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감사함을 느끼는가? 글쎄. 그 모든 것이 나의 일로 떨어지기 전에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든 일은 매우 감사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짊어질 때 당연히 우리는 자유를 저당잡힌다. 내 한몸을 내가 원할 때에 원하는 곳으로 가거나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어떤 틀 속에서 제한된다. 사실 오랫동안 인류는 이 부자유에서 자유롭기 위해 노예 제도를 활용했다. 그 만큼 이 일들은 인간을 옭아매고 괴롭힌다. 이것을 인정해야한다. 자발적인 수도와 고행의 일부로 잡다한 노동을 선택한 성직자 외에 인류는 오랫동안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일을 면제해왔다.


따라서 가사 분담을 둘러싼 부부의 갈등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 인간을 예속시키고 복종하게 하는 과정이 아니라 함께 하고 각자의 수행의 일부로 받아들일  각오가 없이는 이 노동은 부과될 때마다 존재에 대한 태도로 치환되어 우릴 괴롭힌다.


그렇다. 브렌다는 성이 나서 누구에게나 화를 낸다.

야스민은 소심하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여자이다. 그녀 역시 남편과 헤어져 이 황량한 카페에 도착했다.

우주에서 불시착된 우리는 항상 어떤 장소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무작위로 말이다.


무엇을 해도 소리만 지르는 브렌다를 미워할 수도 있을텐데 야스민은 그녀의 마음을 궁금해했다.


무엇을 해주면 마음이 풀어질까 하고 말이다.


이 두 주변인, 흑인 여성과 뚱뚱한 불법체류 여인은 어긋나기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야스민의 딱 한마디에 브렌다는 마음을 열었다.


“도저히 못 참겠어요. 나한테 왜 이러는 거죠? 가서 당신 애들하고나 이래요”

“난 아이가 없어요.”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은 나와 달리 모든 걸 갖고 있다고 생각할까. 때론 나한테 있는 허접한 어떤 것도 아예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아니 반드시 있다.

불평만 하던  브렌다는 그 대화 이후로 야스민과 친구가 되기 시작한다.


영화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이 영화를 통해 나는

낯선 지구에 떨어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열고 외로운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것 뿐임을. 그것만이 내가 있는 곳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음을 환기하게 되었다.

야스민이 모델을 하면서 보여주듯

누군가와 익숙해지는 일은

타인의 시선을 조금씩 신경쓰지 않게되어

결국 스스로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내가 수용한 만큼만 나눌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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