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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Feb 26. 2019

게임의 교훈

인생에서 경험하는 일들 중에 교훈을 주지 않는 일은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사실이다.


나는 지루한 것을 못 참는다.

그래서 중독 성향도 강하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요구하면서

그보다는 후한 보상을 느닷없이 주는 기제가

중독의 본질 아닌가.

물론 그 노력들은 내 능력은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을 우쭐하게 만들고,

뭔가 해낸 거 같지만

그 기쁨을 누릴 때조자도 우리의 영혼은 알고있다.


'이건 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아닌 내 시간만 사용하고 있어.

지루한 내가 천천히 죽고 있어'


그래도 거기에 매달리게 되는데

나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모험과 위험들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 우리 인생을 걸고 싶다.

그렇지만 동시에 겁이 나니까.

중독은 투신과 두려움의 간극을 버티지 못하는 자가 에라 모르겠다 버리는 시간 속에서 꽃핀다.


아이들이 한창 손이 많이 가던 시기(!)에 강박적으로 빠졌던 게임은

컴퓨터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카드 게임이었다. (솔리테어 콜렉션?)

(당시 나는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나왔던 컴퓨터 기능이 다 되는 폰을 사용했다)

여러가지 게임이 있지만,  주로 나는 산술적이고 계산적인 게임들을 선택한다.

사실은 시간 압박이 있고, 쿵쿵쿵 하면서 위협이 오다가 적에 의해 내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그런 게임을 감당하지 못해서이다.

오래 생각하고, 기회가 무수하고, 우주의 우연이 함께 작용하는 게임.


카드 게임을 할수록 경우의 수를 무수하게 생각하게 되는데

펼쳐 있는 패와 내가 선택한 패, 가로막혀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패, 그걸 열기 위해 또 다른 전략을 짜고, 그러러면서 그 다음 패의 기회를 가로막게 되는 난수표같은 그런 얽힘을 풀어내는 것이 좋다.

때론 정말 더 이상 패가 없을 때는 새로운 카드를 하나 가져와야 하는데

약간 낭패의 기분을 느끼면서 동시에 나를 구원해줄 기대로 덮여있던 카드를 뒤집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새 카드를 가져오면

내가 가진 패 중에 대체할 수 있는 패가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때의 교훈은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다.

"남에게 있는 것을 부러워 말라. 이미 너에게 다 주어져 있다. 부족하더라도 네 안에서 찾아라." 였다.

이 문장이 탁 떠오르자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이 밥을 먹거나 놀때면 노상 붙들고 있었던

그 게임을 그만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사용할 수 있었던 그 카드들이 계속해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쌈박하고 오차없이 탁탁 들어맞는 유일하고 이상적인 각본을 들고

거기에 맞는 패만 고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약간 손실을 감수하거나,

이 위기를 넘어가는데 쓰여질 수 있는 험블한 패들은 보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게임이 이렇게나 유익하다.


나는 아이들이 게임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리고 동영상을 보느라 잠도 안자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 짜증이 꽉 차있는 꼴을 보기 싫어하지만,

늘 믿는다.

어떤 동굴이든 들어갔다 나오면서 무언가를 얻게 된다는 걸.


동굴 속의 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망가질 것 같은 불안을 달랜다.

그건 그 아이의 무의식과 존재의 길항 작용을 무시하는 나의 망상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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