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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Feb 28. 2019

정성을 다하기

정성을 다한다는 건 

열심히 하는 것과는 결이 좀 다르다.

둘 다에너지를 집중해서 한다는 표현인데도

대번에 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가. 


우리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단어를 선택하곤 하는데

어쩌면 언어 자체가 이미 집단 무의식의 그물망에 잡힌 것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스스로 열심히 산다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하는 이들과 얘기하다보면, 

거의 매번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는 지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각본에는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든지, 혹은 인정받는 날이 올거라는 

인과론적 보상이 전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열심히 안하는 타인이 보상을 받을 때나

열심히 하는 자신과 별다를 것 없는 보상을 받을 때

분노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즉 열심히 산다는 자신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인정이나 성공이

생각만큼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 분노의 포인트인 경우가 많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이러한 생각은 '착각'이며 '망상' 이며 

나는 주로 '미신'이라는용어를 선택한다. 

미신은 도처에 존재한다.

귀신에 사로잡힌 이들을 흔히 정신병자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고집스런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열심을 통해 자신을 구원받고자 하는 

그 마음 밑바닥에는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열등감, 무가치함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열심에 빠지게 되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과정 중에 

결과와 상관없이 경험하는 희열과 몰입감이

우리 자신을 순수하게 정화하고 격상시키는 듯한

'뽕' 상태에 들어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무가치함과 열등감은 

어린 시절의 과대자기가 안전한 현실 속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현실적인 자기감을 구성하고 통합했어야 했지만

지지해줄만한 대상이 부재했거나, 심각한 결핍이나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바람에

흠집을 경험한 사람들의 정서이다. 

이 뽕 경험과 함께 든든한 동화책같은 열심- 보상 구도는

실제 현실에서 작동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종교가 되고 말았다. 


사실 의지를 끌어올려 일정한 지향을 유지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행위이다.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것이지만, 

보상은 항상 과정 중에 있다. 

인간에게 그 이상은 언제나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이에게서

나는 빛을 본다.

그는 

자기 자신의 선함을 믿으며

내부의 짜증과 일탈과 산만함을 다스리고

무의식적이 소망의 환상에 매달리지 않은 채

가치를 선택했기에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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