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

by 앤 쑤

나는 그의 삶을 판단할 아무런 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실 그건 좀 이기적이었다. 내 판타지 속의 그 인물이 살아있었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달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무엇을 더 캐묻지도 않았다.

낯선 돌에 내 연장이 거칠게 부딪혀 덜컥 좌절하고 싶진 않았다.

대화는 안전하고 보드라운 흙 쪽을 살살 헤집곤 했다. 궁금했다. 하지만 너를 보호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제야 겨우”, 그래, 그 말만 붙잡았다.



그러나 때로는 묻지 않고도 한번에

네가 지나온 어떤 경험들을 몽땅 떠올릴 수 있었다.


자기애가 턱없이 상승했다가 곤두박질 쳐질 때가 있다. 상승할 때의 유치찬란함이 곤두박질의 원인인 것만 같아 스스로 부끄러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대망상이 깨질 때 얼마나 아픈가. 나는 잠시 내가 맘에 들었고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내동댕이쳐진 땅바닥이 화가 났다.

앞뒤없는 설움과 징징대는 내 눈물을 너는 다 받아주었다. 비웃지도 비난하지도 고소해하지도 않았다. 차근히 다 듣고 나선 나를 공격한 이의 부당한 논리를 얘기하면서 편을 들어주었다. 그 논리는 현실적으론 작동하기 어려웠지만 논리적으로 정확했다. 무엇보다 유치찬란함의 열기가 어느새 신기루처럼 날아갔다. 그런데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건 그냥 위로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다시 좋아졌다.

그건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일어나 걸어도 좋을 만큼 그 상처가 시시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그 장면을 떠올린다.

어떻게 그 뻔뻔한 시나리오를 참고 들어주었을까.

아마 그는 나를 아기처럼 바라보았을 게다.

그리고 자신이 넘어진 그 경험을 어루만지면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이르자 그가 드문드문 얘기한 모든 장면이 퍼즐처럼 조합되어 떠오른다.


오만하게도

이 세상 누구도 모르는 너의 모습을

나는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 행동의 시시비비나 더 좋았을 어떤 시도도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나에겐 너를 판단할 어떤 틀도 없다.

틀에서 이미 떠났고

틀안에 넣는 걸 애초에 포기했다.

더구나 틀 속에 너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너는 유일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세상의 틀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세상의 틀이 어떻게 그 상황을 재단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기대하던 사람들의 실망과

지지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굴레도 알겠다.


나는 너의 그 모든 감정을 알아버렸다.

어떻게 그 계곡을 지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해준 위로로

네가 그 계곡을 지나왔음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랬기에 외로운 그 길을 나 혼자 걷지 않게 해주려고 내 옆에 있었던 것임을 알아버렸다.


때때로 나혼자 너의 모든 감정의 돌밑을 하나하나 들춰본다. 호기심도 기대도 없이 돌밑에 축축하게 맺힌 눈물 자욱에 가만히 손을 대본다. 아주 짧은 순간, 나는 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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