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by 앤 쑤


또 무엇을 써야할 지 잊고 말았다.
그는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안절부절 식탁 주위를 왔다 갔다 한다.
그가 잊은 건 기억이나 생각이 아니라 어디 두었던 물건의 이름이나 생김새 같다. 도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그런 것이 애초에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건 단지 그게 뭔지 떠올릴 수 없는 나자신 밖에 없다.
하긴 방금 본 거울 속의 모습을 다시 설명할 수도 그려낼 수도 없다. 누군가 나의 사진을 보여주면 단지 그게 나라는 걸 확인해 줄 수 있을 뿐이다. 누가 당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의 사진을 가져다 주고 당신이냐고 묻는다면? 그래, 그는 가보지도 않은 장소에서 찍힌 그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고 끝까지 우길 자신이 없었다. 그는 자기 기억을 그만큼 신뢰할 수가 없다. 존재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헷갈리는 문제다.
그는 사실 우주 저 어딘가에 있는 또다른 자신의 존재를 믿고 있기도 하다. 그가 읽은 모든 글 중 가장 뚜렷이 남은 글 속에서 자신이 우주 저편 어디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별은 무한대로 존재하므로 그 우주안에 지구와 꼭같은 행성이 있을 확률은 정확히 100퍼센트이며 거기에 나와 똑같은 존재가-유전자 구성 뿐 아니라 부모와 환경마저도 같은- 있을 확률 역시 100퍼센트라고 했다. 그 글은 시덥잖은 작자가 쓴 글이 아니라 저명한 천재 과학자의 글이었다.
글을 읽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
외로움은 때론 경이를 발견한다.
그래서 이상한 배경을 하고 서있는 어떤 이의 사진을 보고 그는 의심하지 않고 자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