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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Feb 14. 2020

시간

자연의 가장 큰 힘은 시간이다. 남아도는 시간, 무한정의 시간.

자연선택이나 진화, 생명의 발생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모든 일은 시간을 개의치 않는 쪽의 편이니까. 무한대로 시도할 때 드디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서 케이지 밖으로 걸어 나온다.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는 시간을 느낀다.

움직이고 싶지 않다.

남의 눈에 비치는 꼴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아픔에 머무른다.

이것이 존재로구나.

꼼짝 못 하는 둔중한 무게. 작동 불가를 알리는 육신의 거부. 그 사일 비집고 들어오는 갖가지 감각. 스물 거리고 따끔거리고 거추장스럽다. 서로 연결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덮치고 쏘아대고 긁어댄다. 생각을 배신하고 충동을 엎어친다.

이럴 때 잠이 온다면 축복이지.

시간이 인간에게 손을 못쓰는 지점은 죽음. 의식이 사라진 곳에서 시간은 없다. 그래서 육신이 썩어 구더기 밥이 되는 과정은 평화롭다.

잠, 매일 경험하는 죽음의 연습.

그래서 병자에게 잠은 동종요법이다.


다행히 깜빡 잠이 들었다.

잠시 감각과 생각에서 해방되었던 나는

거울에 비친 넋 나간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이렇게 너그러운 시간을 이용하고 나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부기도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말은

참 신기하다.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통과하면서 변화하기에.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말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의식은 기다림의 시간을 늘이고 벌려 공간 안에 가정과 망상의 궁전을 짓는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가혹한 처벌은 하릴없는 시간이다.


삶의 초반기,

내 삶이 무한대로 늘어져 있어

지루함과 무위로 압살 될 것만 같던 시간들.

긴긴 방학, 이불을 쌓아 올리고

거기에 기대 내게 남은 지루한 시간을 세곤 했다.

허락 없이, 매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 시간을.

그리고 정작 그 시간이 되었을 땐

내 쏟아지는 열정을 들이붓고 싶어서

날마다 성에 안 차는 세상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그때로부터 멀리멀리 온 나는

흐르는 시간을 타고

빙긋 웃고 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뿌듯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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