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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Feb 28. 2020

트라우마, 무의미와 싸우기

트라우마라는 말을 밥먹듯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고통스런 자기 작업 없이 말할 수 없다.  

그들의 트라우마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경험된다.

적절한 단어로 상징화되기 전에

순식간에 과거의 그 시간으로

돌려보내버린다.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그 이야기가 아니라,

숨도 쉴 수 없는 그때 그 감각들이다.


그런데

트라우마 중에 가장 미묘하고

접근이 어려운 경우는 바로

반복적인 정서적 학대 경험이 아닐까.


인간의 뇌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찾게 되어있다.

의지하고 의존하고픈 욕구는 당연하다.

그래서 기대려고 했을 때 밀쳐내는 경우

쉽게 수치심에 노출된다.

절박할수록 우리는 더 부끄럽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끔찍한 일은

가까운 사람의 무관심,

학대, 유기이다.

동시에

누구도 그런 얘기는 판단이나 감정이입없이

있는 그대로 듣기 어렵다.

우리 안에 깊이 눌러 있던 버림받음에 대한

불안을 자극하기에.


트라우마의 본질은

무의미다.

아무런 이유가 없이

문득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재난 트라우마보다

관계 트라우마를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재난의 무의미성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관계 트라우마의 무의미성은

받아들이기가 벅차다.


왜 사랑을 당연히 주어야 할 그 사람이

나를 거부하고

모욕하고

학대한 것일까?

우리는 너무 이해하고 싶으니까

그 원인을 나한테서 찾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방식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원의 에덴 동산을

재구성하고픈 것이다.

가장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은

가끔씩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으로부터 해리된다.


용서하라,

약한 자신을,

보호할 수 없어서

굴복하고, 상처받고, 순응한

역겨운 자신을.


받아들이라,

불행은 예고없이 일어나며

준비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불행은

무작위로 배당되며

내가 선택하거나

선택할 수 없었던 일들의

결과가 아니라고.


모든 것은

무의미하며

그 자체의 결과로 인해

영향을 미칠 뿐이라고.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고.


단지 우리는

무의미를 끌어안고

살아있는 나를

축복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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