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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Apr 09. 2020

생각이라는 장난

언어와 생각의 빈 공간

우리가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면

기쁜 에너지가 솟아나지만(동기!)

안타깝게도 쉽게 배신을 경험하게 되어있다.  


생각은 실물을 다루지 않는다.

무에서 유를 소망하는 생각의 장난은

제약이 없어  못할 것이 없지만

현실을 따져보는 꼼꼼함이 흔히 생략된다.

머릿속은 입맛에 맞게 적절히 부주의하다.

그래서 생각은 즐겁고도 완벽하다.


바로 언어라는 도구의 특성 때문이다.

언어는 속이 텅 빈 장난감이다.

사과를 떠올리면

음성 기표는 뇌 속에서 시각적인 기표로 변환된다.

그리고 빨갛고 동그란 그 이미지는

동시에 시고 단 과즙과 사각사각한 소리와 식감 같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감각들을 환기시킨다.

우리는 음성 기표 하나로 이 모든 걸 떠올리고 경험한다. 가상 경험이라고?

순간 침샘에서 침이 나오고, 단단한 과육을 베어 문 것처럼 어금니가 살짝 시큰한 걸?

그러나 방금 내 이빨에 닿은 그 사과는 어디에 있나?

 그 사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말하던 사, 과 라는 음성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ㅅ'과 'ㅏ' 사이엔 아까 떠올린 어느 것도 담겨있지 않다.

더구나 내가 말한 '사과' 속에 담긴 콘텐츠는

세상 누구의 것과도 같지 않다. 비교도 할 수 없다.

비교하려는 순간 우리는 또 빈껍데기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으니 그것은 영원히 내 집을 떠날 수 없다.


이 텅빈 장난감은 더구나

빛보다 빠른 연상으로 다음 생각을 불러온다.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작은 연결 고리만으로 사과를 보던 우리는 벌써 비행기를 보고 있다.

연상은 가장 원시적인 사고방식이며 에너지가 가장 적게 든다. 그래서 무턱대고 생각나는 대로 어떤 것을 이해하다간 합리적으로 선택하거나 행동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흙장난으로 만든 집과 같다.

아이의 집은 상징적으로나 행위로는 의미가 있고 재미를 주지만 그 안에 들어가 생활하긴 어렵다.

현실의 우리가 안전하고 쓸모 있는 것을 확보하려면

전문 도구와 기법을 쓰는 것은 물론 수학 법칙에 맞는 얼개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 역시

모든 도구의 쓰임과 이름을 아는 것에서 시작하여

마스터들이 사용한 정확하고 우아한 방법을

오랜 시간 동안 숙련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유일한 경험을 표현할 때는 닳고 닳은 관용구를 사용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미지의 복잡한 일은
유한한 경험에서 얻은 단순한 인과관계로

대충 인상만을 파악하는

초보적인 언어 사용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무시무시하게 뻗어나가는 비논리적인 생각의 연상을 전정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며

이것의 가장 큰 폐해는 정치적 담론에서 드러난다.)


물론 이런 생각의 훈련을 통해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언어가  포착한

사적인 경험(비언어적이고 무의식적인!)과 몸의 기억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인과로 나타난 현상에는

끊임없는 노이즈로 인한 확률적 좌절을 수용해야 한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생각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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