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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Jun 06. 2016

나를 기억하기

잊지 않기 위해 쓰기

그날의 나를 기억한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날의 나는 그랬다.

실패하고, 배신당하고, 넘어지고, 좌절했고, 약한 자에게 분노를 퍼부었다.

두려워서 피했고, 그래도 두려움이 발밑을 흔들었다.

나는 훼손되었고, 부분적으로 마비되었으며,

살기 위해 남은 부분들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시끄러워졌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소리를 꽥 질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것들이 다 마모되고,

열에 변형되어 틀어져 버렸다.

살갗이 푸석푸석해지고, 눈은 충혈되었다.

그 전의 내가 어찌 살았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걷다가 어린 아이처럼 앞으로 쿵 넘어지면,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고, 엉엉 울었다.

누가 나를 다시 일으켜 주지 않을까 하고 계속 울었다.

아무도 없었다.

사위에 마른 바람만 불었다.

풀 한포기가 내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

봄이 오고, 여름이 되어 땀이 범벅인데도,

눈이 녹질 않았다. 창문 밖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이 보고 싶었는데,

휘잉휘잉 나뭇 가지가 이리 저리 쓸리는 소리만 들렸다.

세상은 고약한 곳.

나에겐 해넘겨야 할 산더미 같은 고물 쓰레기 같은 일들만 있었다.

아니 고물 쓰레기가 아니라, 내 살들을 위한 일들이었는데

내 살이 썩어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내 몸을 혐오하며 그 일들을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그렇게 아파도 살아낸다.

어떻게든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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