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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Jun 28. 2016

안다는 아픔


그토록 오랫동안 괴롭힌 사람이 뿔달린 괴물도, 악마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괴물을 상대하길 바랬다.


그것은 어쩌면 나에 대한 믿음과

나의 슬픔의 대한 권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누리는 행복을 질투해야 했다.

애쓰며 애쓰며 살아냈다.


마땅히 누려야 할 실패와 배신에 대한 애도를

가로막는 무언의 압력에

'잘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라는 말로 눌러 밟고 온 시간들.

그 시간을 온전히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쩌면, 슬픔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애도의 형식은 복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나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이젠

오랫동안 갈았던 칼로

나를 묶고 있는 밧줄을 끊고,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


꺽여있던 날개가

저리고, 쥐가 나서,

쩔뚝쩔뚝 한동안은 날지 못하고,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믿는다.

슬픔은 그리움의 변주이며,

창공에서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시원의 기억이

나를 다시 하늘로 되돌려 보낼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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