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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Nov 10. 2018

노오란

아름다움이 나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고 하지만

방금 말한 것 중 거기에 실재하거나 일어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거기에는 단지

한 그루의 은행나무와 내가 있었을 뿐이다.


수억년의 유전 여행을 통과한

화석과도 같은 나무.

바쁘게 인도를 걸어올라가던

중년의 여자가 있었을 뿐이다.


아름다움이거나 그것이 불러일으킨 경탄.

일시에 온 우주의 어떤 한 순간이

뇌세포 한 구석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어쩌면 맛있는 설렁탕 국물을 마지막으로 들이킬 때나 사랑과 쾌락의 혼합물이 되었다가 떨어진 직후에 퍼진 전기 신호나 세포전달물질과 일별되지 않는 흔한 순간. 그렇다. 물질은 전부이면서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순간은

깨달음이나 각성 혹은 조명의 순간이라는 기쁨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오묘하고도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과연

이데아가 있는 것인가?

어째서 나는 다른 것에서 느낄 수 없는

정확하고 완벽한 조합이나 비율을 느끼는가.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이미 구현되어

실재한단 말인가?


그러므로 모든 것은 발견일 뿐이지 않은가.

오히려

나는 그러한 것들을 사랑하고 향할 수 밖에 없도록 이미 계획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아니라 저것을 더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되어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지 프로그래밍의 문제일 수 있다.

내가 비롯한 곳이 자연과 우주이므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며 일부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향할 수 밖에 없도록 지어진 것이라는 완벽한 설명이 된다.

그러므로 노오란 은행 나무의 물관 세포와

내 홍채를 이루는 것들은 알수 없는 어떤 것을 나누어 갖고 있을 터이다.

또한 그것은 세포나 물질이  포획할 수 없는

연기라는 거대한 진리가 아니고선

설명할 길이 없다.


모든 존재는 이미 연결되어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너를 만나기로

혹은 다음 어느 순간에라도.


존재는 우연이나

만남은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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